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좌랑, 예조정랑,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정온을 구하는 소를 올렸다가 평소에 반목하던 정인홍(鄭仁弘)의 모함으로 삭직당하고 회양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영변부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그 뒤 호조좌랑 · 예조정랑에 올랐다. 다음 해 사헌부 정언 · 지평 · 장령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1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정경세(鄭經世)를 따라서 영남에 가서 의병을 모집하였으나, 3월에 청나라와 화친하자 돌아와 사간 · 주부를 지냈다. 1628년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631년 홍문관부수찬 겸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이 되고, 이어 수찬 ·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1637년 부응교를 지내고 1639년 통정대부가 되었으나, 1641년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 진주에서 살다가 1644년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이 되고, 이어 우승지 · 병조참지 ·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51년 전주부윤이 되어 1년 동안 지낸 다음, 관직에서 물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임금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관도에 오르지 않았다.
생시에 학문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석천서재(石泉書齋)를 지었으며, 또 유학자들을 위해 이연서원(伊淵書院)과 덕곡서원(德谷書院)을 지었다. 합천의 도연서원(道淵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한사집(寒沙集)』 7권 3책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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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급제 : 『만력38년경술윤3월초6일 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八年庚戌閏三月初六日 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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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급제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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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강대수 저술 : 한사집(寒沙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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