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공조참의,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홍보(弘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730년(영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충청감사
  • 출생 연도1676년(숙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희권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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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공조참의,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甫). 권확(權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우(權垕)이고, 아버지는 사간 권두기(權斗紀)이며, 어머니는 대사간 이합(李柙)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수찬(修撰) · 부교리(副校理), 헌납(獻納),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 보덕(輔德), 부응교(副應敎)를 지냈으며, 1723년(경종 3) 충청감사가 되었다.

1724년(영조 즉위년)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를 지냈다. 신임사화(辛壬士禍: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1721년부터 1722년에 걸쳐 일어난 옥사로 소론이 노론을 역모로 몰아 실권을 잡은 옥사임.)로 실각당하였던 노론이 영조의 즉위로 재집권하자 소론을 축출하였는데, 이 때 소론이었던 관계로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거제에 정배되었다.

1727년에 풀려나와 공조참의 · 함경감사에 올랐으나, 1728년 같은 소론이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연좌되어 다시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그 해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변방에 정배되었다. 1735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1776년에 다시 반역의 죄상이 추궁되어 관작이 추탈되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경원에 유배 : 『영조실록』 4권, 1725년(영조 1) 3월 5일. "지평 이의천이 권익관·이진수·이거원의 유배지 문제를 거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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