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공조참의,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4년(영조 즉위년)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를 지냈다. 신임사화(辛壬士禍: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1721년부터 1722년에 걸쳐 일어난 옥사로 소론이 노론을 역모로 몰아 실권을 잡은 옥사임.)로 실각당하였던 노론이 영조의 즉위로 재집권하자 소론을 축출하였는데, 이 때 소론이었던 관계로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거제에 정배되었다.
1727년에 풀려나와 공조참의 · 함경감사에 올랐으나, 1728년 같은 소론이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연좌되어 다시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그 해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변방에 정배되었다. 1735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1776년에 다시 반역의 죄상이 추궁되어 관작이 추탈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경원에 유배 : 『영조실록』 4권, 1725년(영조 1) 3월 5일. "지평 이의천이 권익관·이진수·이거원의 유배지 문제를 거론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