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甫). 권확(權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우(權垕)이고, 아버지는 사간 권두기(權斗紀)이며, 어머니는 대사간 이합(李柙)의 딸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주1하여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수찬(修撰) · 부교리(副校理), 헌납(獻納),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 보덕(輔德), 부응교(副應敎)를 지냈으며, 1723년(경종 3) 충청감사가 되었다.
1724년(영조 즉위년) 대사간에 오르고, 이어 승지를 지냈다. 신임사화(辛壬士禍: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1721년부터 1722년에 걸쳐 일어난 옥사로 소론이 노론을 역모로 몰아 실권을 잡은 옥사임.)로 실각당하였던 노론이 영조의 즉위로 재집권하자 소론을 축출하였는데, 이 때 소론이었던 관계로 함경도 경원에 주2 다시 거제에 정배되었다.
1727년에 풀려나와 공조참의 · 함경감사에 올랐으나, 1728년 같은 소론이었던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연좌되어 다시 절도(絶島)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그 해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또다시 변방에 정배되었다. 1735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1776년에 다시 반역의 죄상이 추궁되어 관작이 추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