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빈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충청도암행어사, 이조좌랑, 경기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위사(渭師)
이칭
진선군(晉善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1년(인조 9)
사망 연도
1691년(숙종 17)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충청도암행어사|이조좌랑|경기도수군절도사
관련 사건
기사환국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도암행어사, 이조좌랑, 경기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위사(渭師). 우의정 강사상(姜士尙)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홍중(姜弘重)이고, 아버지는 목사 강욱(姜頊)이며, 어머니는 이창원(李昌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문명을 떨쳤으며, 생원 ·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었다. 1668년 강원도도사가 되었으나, 기민구제를 게을리한다는 대간의 계(啓)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669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현종에게서 호피(虎皮: 호랑이 가죽)가 하사되었으며, 1675년 남인이 정권을 잡자 사간원정언에 복직, 홍문관부수찬 · 수찬을 지냈다. 이듬해 충청도암행어사 · 이조좌랑 · 교리 · 사인(舍人) · 응교(應校) · 사간을 역임하였다.

문무의 재능을 인정받아 묘당(廟堂)의 추천으로 경기도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으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정권이 서인에게 넘어가자, 경기수사로서 민폐가 많고 근무가 태만하다는 서인들의 탄핵을 받고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1689년 원자문제로 일어난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자 풀려나와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어, 1691년 대사간이 되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노독(路毒)으로 죽었다. 진선군(晉善君)에 습봉(襲封: 봉군을 이어 받음)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번암집(樊巖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