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김창조의 제자로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명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거주지를 대구로 옮겨 살면서 때때로 서울에 올라와서 협률사(協律社)와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참여하여 연주활동을 하고 축음기로 가야금산조 및 가야금병창을 취입하였다. 그때 박차경(朴且更)·최금란(崔錦蘭) 등 제자를 길렀다.
40대 후반에는 부산에서 살며 원옥화(元玉花)·김춘지(金春枝)·구연우(具演祐)·신명숙(申明淑) 등 여러 제자를 길렀는데, 김춘지는 뒤에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만년에는 불교에 심취하였고, 음악적으로 심화된 가야금산조를 지어 여러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윤덕과 박귀희도 배운 일이 있으며, 그의 예술은 제자들에 의하여 널리 전승되어 가야금독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그가 연주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축음기판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 『강태홍류가야금산조연구』(강태홍류가야금산조보존회, 199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