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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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김창조가락 가야금산조」를 지은 거문고명인.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김해(金海)
  • 사망 연도191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5년(고종 2)
  • 출생지전라남도 영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숙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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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김창조가락 가야금산조」를 지은 거문고명인.

내용

본관은 김해(金海). 전라남도 영암 출생. 영암에 살다가 1917년경에 광주로 옮겨 살았다. 가야금 · 거문고 · 양금 · 젓대 · 퉁소 · 해금 등 모든 악기에 능했다. 19세 때부터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가락을 도입하여 민속장단인 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장단에 짜넣어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연주시간 15∼20분의 김창조가락 가야금산조를 한성기(韓成基) · 최옥산(崔玉山) · 김병호(金炳昊) · 강태홍(姜太弘) · 안기옥(安基玉), 정남희 등에게 전수하여 각 연주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가락을 첨가하였으나, 그 틀은 그대로 남아 연주되고 있어 그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손녀이며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죽파(金竹坡)가 대부분의 가락을 이어왔다.

참고문헌

  • - 『문예총감』(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 - 『가야금산조』(이재숙, 한국국악학회, 1971)

  • - 「가야금산조의 틀에 대한 소고」(이재숙, 『이혜구박사송수기념음악학논총』,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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