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건축공사 때 발굴되었다. 비문에 의하면 묘의 주인공은 이여주(李汝柱)로 1643년(인조 21)에 태어났는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안성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이정암(李廷馣)의 4대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다가 1705년(숙종 31년) 62세로 죽었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 우선 옷을 만든 천의 종류를 보면, 운문단(雲文緞)·대단(大緞)·공단(貢緞)·운문항라(雲文亢羅)·고사(庫紗)·명주(明紬) 등이 있다. 이들 천은 황토색·자색·목홍색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무늬는 구름무늬가 많다.
천의 너비는 비단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63㎝(2자)로서 당시의 사(紗)·나(羅)·단(緞) 등의 직조규격을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출토된 각종 복식류를 보면 도포와 비슷한 중치막(큰 장옷·大氅衣)이다.
대창의와 비슷하지만 소매가 짧은 소창의(小氅衣), 두루마기, 소매가 없이 두루마기에 끼어 입는 전복(戰服), 치마처럼 허리 아래를 넓게 하고 잣주름을 달아 마치 소매가 넓은 저고리에 치마를 단 것과 같은 형태의 철릭[天翼], 근세에 남자들이 입은 조선바지와 형태가 꼭 같은 바지 등이 있다.
이상의 여러 종류의 의복을 통해 18세기 전후의 남자의복의 특징을 알 수 있다. ① 섶은 예외없이 오른쪽으로 여몄으며 고름은 짧고 좁다. ② 철릭은 계절에 관계없이 홑것이다. ③ 겉옷은 전부 발목까지 내려오거나 땅에 닿을 정도로 길며 소매는 넓다.
④ 속옷은 희며 겉옷은 전부 색깔이 있어 연한 황토색·자주색·목홍색이 대부분이다. ⑤ 창의는 전부 누비옷으로 누빈 솜씨가 오늘날 재봉틀에 의한 것처럼 매우 정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