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집 ()

개암선생문집
개암선생문집
유교
문헌
19세기 중반, 조선 전기 학자 강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개암선생문집(介庵先生文集)
문헌/고서
간행 시기
19세기 중반
저자
강익(姜翼)
권책수
2권 1책
권수제
개암선생문집(介庵先生文集)
판본
목판본
표제
개암집(介庵集)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개암집』은 19세기 중반 조선 전기 학자 강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강익의 손자와 증손에 의해 유고가 수습되어 1686년 남계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이후 19세기 중반 후쇄되었다. 문집은 시, 편지글, 기문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과 함께 세계, 연보, 행장 등 부록을 포함한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조식, 김우옹 등과 주고받은 시문과 국한문 혼용의 초기 국문시가는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

정의
19세기 중반, 조선 전기 학자 강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강익(姜翼: 1523~1567)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이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49년(명종 4) 진사가 된 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서지사항

『개암집(介庵集)』은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1686년(숙종 12) 초간 이후, 19세기 중반에 다시 추각하여 간행한 후쇄본이다. 1706년에 정기윤(鄭岐胤)이 쓴 서문이 있고, 1662년(현종 3)에 정광연(鄭光淵)이 쓴 발문과 1686년에 양천익(梁天翼)이 쓴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강익의 시문은 병란 중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손자 강전(姜絟)이 처음으로 유고를 수습하고, 정광연에게 발문을 청탁하는 등 문집 정리에 힘썼다. 이후 증손인 강대징(姜大徵)이 다시 편찬에 착수하여, 1662년에 정광연의 발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 초고본은 편차(篇次)가 정밀하지 않고 일부 글이 누락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1686년 양천익이 이를 재차 교정하고 재편집했으며, 직접 발문을 썼다. 같은 해 양천익의 주관 아래 강익이 배향된 함양(咸陽) 남계서원(灆溪書院)에서 『개암집』 초간본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한편, 초간본에는 1706년에 작성된 정기윤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고, 1846년에 강익의 8세손 강연조(姜延祚)가 쓴 묘갈명도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개암집』은 초간 이후 다시 추각하여 후쇄본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성과 내용

권상에는 「숙야재독역(夙夜齋讀易)」 등 시(詩) 20여 수가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의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1566년에 ‘서계지약(西溪之約)’을 맺고 지은 시들이 「서계창수(西溪唱酬)」 라는 제목 아래 수록되어 있으며, 노진(盧禛) · 김우옹(金宇顒) · 양홍택(梁弘澤) 등의 원운(原韻)과 이에 화답한 차운시(次韻詩)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김우옹이 지은 「수창록서(唱酬錄序)」가 덧붙여져 있다.

이외에 조식(曺植)에게 올린 「상남명선생서(上南冥先生書)」를 비롯해 6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산문 가운데는 두류산 자락에 건립한 서재에 관한 「양진재기(養眞齋記)」, 오랜 기간 강익이 관여했던 남계서원에 관한 「남계서원기(籃溪書院記)」 등 기문이 포함되어 있다. 추록으로 수록된 「단가(短歌)」 3편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것인데, 비교적 초기의 국문시가로 평가된다. 이는 강익이 전원생활의 감흥을 노래 형식으로 표현한 시가로서, 국문시가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권하에는 세계(世系), 연보, 행장 등의 부록이 실려 있다. 연보는 숙종 대에 양천익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행장은 종자인 강위수(姜渭琇)와 정온(鄭蘊)이 지은 것이 각각 전한다. 이외에도 양천익이 작성한 묘표문(墓表文), 노진 · 김우옹 등이 쓴 제문(祭文), 조식이 지은 만장(挽章)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익의 남계서원 승배(陞配)를 청하는 후손 강명세(姜命世)의 상소와 고유문이 있으며, 1846년(헌종 12) 후쇄 당시 판차를 달리하여 추각한 박세채(朴世采)묘갈명(墓碣銘)이 있다.

의의 및 평가

『개암집』은 강익의 학문과 사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식, 김우옹 등과 같은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글과 수창한 한시 작품들, 그리고 기문을 비롯한 각종 산문 작품들을 통해서 학자와 문인으로서 강익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원생활의 감흥을 노래하되 국한문 혼용으로 지은 작품들은 국문시가로는 비교적 초기 작품에 해당되어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개암 강익』(남명학연구원, 예문서원, 2017)
이미실, 『개암집 해제』(한국고전번역원, 1998)

논문

구진성, 「개암 강익의 산문문학에 드러난 학문지향」(『남명학연구』 56, 경남문화연구원, 2017)
문범두, 「개암 강익의 학행과 문학」(『한민족어문학』 56, 한민족어문학회, 2010)
윤호진, 「『개암집』 해제」(『남명학연구』 10,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0)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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