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세기 중반, 조선 전기 학자 강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서지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이에 따라 1686년 양천익이 이를 재차 교정하고 재편집했으며, 직접 발문을 썼다. 같은 해 양천익의 주관 아래 강익이 배향된 함양(咸陽) 남계서원(灆溪書院)에서 『개암집』 초간본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한편, 초간본에는 1706년에 작성된 정기윤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고, 1846년에 강익의 8세손 강연조(姜延祚)가 쓴 묘갈명도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개암집』은 초간 이후 다시 추각하여 후쇄본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성과 내용
이외에 조식(曺植)에게 올린 「상남명선생서(上南冥先生書)」를 비롯해 6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산문 가운데는 두류산 자락에 건립한 서재에 관한 「양진재기(養眞齋記)」, 오랜 기간 강익이 관여했던 남계서원에 관한 「남계서원기(籃溪書院記)」 등 기문이 포함되어 있다. 추록으로 수록된 「단가(短歌)」 3편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것인데, 비교적 초기의 국문시가로 평가된다. 이는 강익이 전원생활의 감흥을 노래 형식으로 표현한 시가로서, 국문시가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권하에는 세계(世系), 연보, 행장 등의 부록이 실려 있다. 연보는 숙종 대에 양천익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행장은 종자인 강위수(姜渭琇)와 정온(鄭蘊)이 지은 것이 각각 전한다. 이외에도 양천익이 작성한 묘표문(墓表文), 노진 · 김우옹 등이 쓴 제문(祭文), 조식이 지은 만장(挽章)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익의 남계서원 승배(陞配)를 청하는 후손 강명세(姜命世)의 상소와 고유문이 있으며, 1846년(헌종 12) 후쇄 당시 판차를 달리하여 추각한 박세채(朴世采)의 묘갈명(墓碣銘)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개암 강익』(남명학연구원, 예문서원, 2017)
- 이미실, 『개암집 해제』(한국고전번역원, 1998)
논문
- 구진성, 「개암 강익의 산문문학에 드러난 학문지향」(『남명학연구』 56, 경남문화연구원, 2017)
- 문범두, 「개암 강익의 학행과 문학」(『한민족어문학』 56, 한민족어문학회, 2010)
- 윤호진, 「『개암집』 해제」(『남명학연구』 10,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0)
인터넷 자료
-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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