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용흥리 출토 일괄 유물 ( )

선사문화
유물
평안남도 개천군 중서면 용흥리 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일괄유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평안남도 개천군 중서면 용흥리 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일괄유물.
개설

이 유물은 1939년 매장문화재(현, 매장유산)로 신고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종류는 요령식 동검 1점, 청동제 손칼 1점, 꾸밈구슬 1점, 돌도끼 1점이다.

내용

요령식 동검은 길이 26㎝로 칼끝과 날쪽의 굽은 각이 전형적인 요령식 동검보다 세장(細長)되어 있는 형식이다. 등대의 날은 중앙보다 4㎝ 정도 밑까지 갈았고 돌기(突起)가 있는 곳의 등날이 약간 높게 만들어져 있다.

흔히 우리 나라에서 출토되는 요령식 동검은 슴베에 홈이 파여 있는데, 이 동검에는 홈이 없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동검은 청동기시대의 한반도와 중국 요령지방간의 문화교류관계를 밝히는 좋은 자료이며, 한국식 동검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청동제 손칼은 길이 13.8㎝, 너비 2.3㎝이며 자루의 날 쪽에는 나무나 뼈로 만든 자루를 끼기 위한 두 개의 돌기가 있고 칼 끝은 위로 약간 꺾여 있는 모습이다. 홀거푸집〔單範〕으로 매우 거칠게 주조되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돌기 달린 손칼로는 유일한 예이나,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간혹 출토되고 있다.

꾸밈구슬은 천하석제(天河石製)로서 길이 4㎝, 너비 2.6㎝이다. 가운데가 약간 볼록한 반원형 돌의 위 아래에 작은 구멍이 한 개씩 뚫려 있다. 이 같은 형태의 꾸밈구슬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응봉동, 충청남도 아산군 백암리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돌도끼는 사암제(砂岩製)로 길이 11.9㎝, 너비 6㎝이며 단면 타원형 조개날〔蛤刃〕돌도끼이다.

이 일괄유물들, 특히 요령식 동검과 청동제 손칼은 우리 나라 청동기의 계보와 유입경로 및 그 연대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즉, 우리 나라의 청동기문화는 중국 동북지방 청동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태동하였고, 이 후 자체 발전하여 한국식 동검문화를 완성한 것이 밝혀졌다.

의의와 평가

이 유물들의 연대는 중국에서 출토된 청동유물과 우리 나라의 한국식 동검의 연대와 비교해볼 때 서기전 5세기 말에서 서기전 4세기 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개천(价川) 용흥리출토(龍興里出土) 청동검(靑銅劍)과 반출유물(伴出遺物)-세형동검(細形銅劍)의 기원(起源)과 관련(關連)된 일고찰(一考察)-」(한병삼, 『고고학(考古學)』 1, 1968)
집필자
한영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