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동기는 광복 전 우리나라에 살았던 일본인 오구라[小倉武之助]의 수집품이었으나 현재는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기증, 보관되어 일본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토지는 확실치 않으나 경주지방 출토품으로 전한다.
형태는 약간 배부른 넓은 밑이 안쪽으로 꺾여 둥글게 좁혀진 형태를 하고 있는데, 둥글게 좁혀진 윗부분에 1조의 돋을띠[突帶]가 돌려져 있다. 표면의 테두리에는 톱니무늬가 1조 돌려져 있고, 그 안쪽과 중앙부에는 양측에 점줄무늬를 돌려 만든 구획 내부에 Z자 구획과 빗금무늬를 치밀하게 음각하여 두 개의 공간대를 구성하고 있다.
왼쪽 공간대에는 타래무늬와 호랑이 한마리가, 오른쪽 공간대에는 타래무늬와 긴 뿔이 달린 사슴 두 마리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아래쪽 사슴의 등에는 기다란 창이 꽂힌 채로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네 귀퉁이 쪽에 한 개씩 반원형 손잡이가 붙어 있어 착장(着裝)이 가능토록 되어 있다. 크기는 길이 23.8㎝, 최대너비 17.8㎝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청동기로는 이것이 유일한 예이나, 표면에 이러한 타래무늬가 있는 것은 화순(和順) 및 덕산(德山) 등지에서 출토된 가지방울[八珠鈴]과 장대투겁[竿頭飾] 등이 있다.
그리고 Z자 구획과 빗금무늬는 아산 · 대전 · 예산 등지의 충청남도 일대에서만 출토되고 있는 대쪽모양동기[劍把形銅器]와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등에 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청동기는 서기전 3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지로 전해지는 경주지역보다는 오히려 충청도 쪽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청동기의 용도는 견갑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청동기는 중국 요령성(遼寧省) 정가와자(鄭家窪子) 6512호 묘에서 1점 출토된 예가 알려져 있다. 보고자는 이를 손칼을 넣은 가죽부대의 장식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와 요령지방과의 관계로 볼 때 두 지역간의 교류에서 만들어진 청동제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표면에 새겨진 동물문양과 사슴에 꽂혀 있는 창 등은 수렵민의 주술적인 기원을 반영하는 것으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