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개더미는 궁산마을에 인접해 있는 높이 20m의 낮은 구릉 동남쪽 경사면에 있으며, 현재 해안선에서 직선거리로 약 2㎞쯤 떨어진 곳이다.
이 유적은 1950년 4월 6개의 지점에서 50㎡의 구덩이 1개와 10∼30㎡의 구덩이 5개를 발굴 조사하였다. 이 6개의 구덩이에서는 집터 5기와 자연구덩이 3개가 조사되었다.
① 제1호구덩이 : 오목한 구덩이로 화강암반 위에 60∼80㎝ 두께의 조가비층이 퇴적되어 있었다. 이 구덩이에서는 집터로 인정될 만한 시설은 조사되지 않았다. 조가비층 내에서는 점선물결무늬[波狀點線文]가 시문되고 바탕흙에 활석이 섞인 빗살무늬토기조각과 갈판·갈돌·그물추·가락바퀴·흙구슬·돌괭이 등이 출토되었다.
② 제2호 구덩이 : 특별한 시설물이 조사되지 않았다. 활석이 섞인 빗살무늬토기와 갈판·간돌도의 끼·뼈바늘이 출토되었다.
③ 제3호 구덩이 : 이 구덩이는 지름 5.6∼5.8m 정도의 원형 움집터이다. 점토로 다진 바닥 중앙부에는 돌을 둘러 만든 화덕자리가 있고, 주위에는 기둥구멍이 돌아가며 있었다. 이 집터의 내부에 퇴적된 조가비층에서는 바탕흙에 활석이 섞인 빗살무늬토기조각과 석기로는 화살촉·창·도끼·대패·그물추·갈판·숫돌 등이, 골기로는 뿔괭이·뒤지개·바늘 등이 출토되었다. 바늘 한 점의 귀에는 베실이 끼여 있는 채로였다. 이 밖에 사슴·산돼지·개·물소뼈도 출토되었다.
④ 제4호 구덩이 : 내부에 105∼115㎝ 정도의 두께로 조가비가 쌓여 있는 4m×5m의 타원형 구덩이로 별다른 시설물은 없다. 조가비층 내에서 점선물결무늬가 시문된 활석질의 빗살무늬토기조각과 흙구슬 20개, 그물추 10개, 유엽형 돌살촉·돌도끼·갈판이 출토되었다.
⑤ 제5호 구덩이 : 이 구덩이 안에는 중간에 5㎝ 두께의 점토층을 경계로 퇴적되어 있는 상·하 2개의 조가비층에서 각각 1개씩의 집터가 조사되었다. 위층에서 조사된 집터의 중앙부에는 점토로 테를 두른 화덕자리가 있었다. 아래층에서 조사된 집터의 중앙부에서는 돌로 테를 두른 화덕자리가 조사되었다.
위의 조가비층은 동북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확장한 결과, 여기서도 5.5∼6m 규모의 움집터 1기가 조사되었다. 점토로 다진 바닥의 중앙부에는 돌로 테를 두른 화덕자리가 있었다. 그 곁에서는 바닥을 자른 채 거꾸로 박아놓은 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3호 구덩이와 거의 같다.
⑥ 제6호 구덩이 : 이 구덩이에서는 지름 5.2m의 원형 움집터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주거지는 5호 구덩이 확장부에서 조사된 집터와 같다. 유물은 다른 구덩이의 유물상과 비슷하며, 뼈로 만든 낫과 무늬새기개가 출토되었다.
궁산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점토질 바탕흙에 활석과 석면을 섞은 것과 모래와 운모를 섞은 것을 사용하였다. 바닥은 거의가 둥근 바닥이나 3·5·6호 구덩이에서는 납작바닥도 간혹 출토되고 있다.
아가리무늬로는 점렬문(點列文)·조문(爪文)·어골문(魚骨文)·중호문(重弧文)이 있고, 몸통무늬로는 종주어골문(縱走魚骨文)·더블류대문(W帶文)·찰과문(擦過文) 등이 보인다.
궁산에서는 괭이·굴봉·뒤지개·낫 등 농경에 관계된 유물이 다른 신석기 유적에 비해 다량으로 출토되어 원시농경이 본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물소뼈가 출토된 점은 농경에 적당한 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적이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과 그물추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는 점에서 주된 생업경제는 어로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가락바퀴가 상당수 출토되고, 바늘에 베실이 끼여 있는 채로 출토된 점은 직조기술단계도 본격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유적의 연대는 토기의 문양 및 유물상으로 볼 때, 신석기시대 전기 후반에서 중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