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봉(掘棒), digging tick’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기다란 막대기로, 옆에는 발로 밟아 누를 수 있도록 작은 가지가 달려 있기도 하며 끝이 뾰족하다.
재질은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다루기 좋은 나무나 대나무 등이다. 돌연모나 뼈연모에 앞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원시적인 농경도구이다.
이 연모는 식량채집단계에서는 땅 속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알뿌리 식물을 찾아 파내는데 쓰였다. 당시의 농경은 매우 원시적인 형태로서 겨우 시도단계 정도로, 식생활의 대부분은 채집이나 물고기잡이, 사냥 등이 주류를 이루는 구석기시대적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단계였을 것이다.
이어 화전농경단계에서는 풀뿌리나 작은 나무를 제거하거나 개척작업, 곡식심기 등 광범위한 농업활동에 사용되었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서 류큐(琉球)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화전농경민들은 뒤지개를 이용해 제초작업이나 알뿌리수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뒤지개를 이용한 농경활동은 신석기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나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단지 신석기시대 유적인 평안북도 용연 궁산리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뒤지개는 나무로 만든 것에서 뼈로 만든 뒤지개로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뒤지개는 돌연모인 보습이나 도끼[打製石斧]로 이어져 농경지의 개척이나 제초 및 파종(播種)에 사용되었다. 이것은 씨앗을 심기 위해 구멍을 뚫거나 땅을 뒤져 수확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논두렁에 콩을 심을 때나 묘판에서 종자모를 옮겨심을 때 뒤지개농사의 일면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