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강안 단구에 위치하고 있는 이 유적은 1960년대에 미국인 체이스(Chase, D.W.)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지표조사 및 간단한 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집터 등의 유구는 확인하지 못하고 단지 빗살무늬토기조각과 타제석기만이 채집되었다. 토기조각은 한강유역의 다른 빗살무늬토기조각과 마찬가지로 바탕흙이 운모가 많이 섞인 사질(砂質)로 빚어졌다.
채집된 아가리와 몸통조각의 무늬를 보면, 아가리에는 손톱무늬와 짧은 빗금무늬가, 몸통에는 생선뼈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복원된 토기의 용량은 4ℓ들이가 제일 많고, 0.3∼24ℓ들이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석기는 그물추ㆍ보습ㆍ갈돌ㆍ찌르개ㆍ밀개 등이 채집되었으며, 재질은 화강암이 제일 많고 기타 사암ㆍ운모석ㆍ규암 등으로 동막동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들이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갈돌과 보습 등은 식물성 자원의 이용을 나타내며, 그물추는 강물고기의 포획을 보여준다.
유적이 정식으로 발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은 규명할 수 없으나, 채집된 유물로 미루어보아 인접한 암사동ㆍ미사리ㆍ선리 등의 유적과 같은 신석기시대 중기의 유적으로 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