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인창동 유적

  • 역사
  • 유적
  • 청동기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구멍무늬토기·외반구연토기·홈자귀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안승모 (국립중앙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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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구멍무늬토기·외반구연토기·홈자귀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내용

일제시대에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가 수차에 걸쳐 인창리일대에서 유물을 채집하였으나, 유적의 정확한 위치나 성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채집된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토기와 석기로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토기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외반구연토기(外反口緣土器)·쇠뿔잡이토기[牛角形把手附土器] 등의 조각들이고, 석기는 도끼·자귀·끌·대팻날[扁平單刀石斧]·홈자귀[有溝石斧]·반달칼·슴베식돌검[有莖式石劍], 독사머리형·삼각형의 돌살촉, 가락바퀴·돌창·그물추·숫돌 등의 다양한 종류가 채집되었다.

이들 석기의 특징은 미완성품과 완성품이 고루 섞여 있어 두드려 때리기[敲打]에서 구멍뚫기, 마연에 이르는 석기의 제작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곳에서 출토된 토기 중 구멍무늬토기·외반구연토기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의 것이나 쇠뿔잡이토기는 후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후기의 유물이 섞여서 채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홈자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석기들은 구멍무늬토기와 외반구연토기가 사용되던 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양주군인창리유적」(이백규, 『고고미술』129·130,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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