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에서 독로강(禿魯江)을 따라 북쪽으로 32㎞ 정도 떨어져 있는 강안의 넓은 벌판과 그 옆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넓은 벌판에는 약 200기에 달하는 고구려 적석총이, 언덕에는 선사시대 포함층이 분포되어 있다. 1957년 구덩이를 파던 인부에 의하여 발견, 신고되어 1958년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 의하여 수 십기의 적석총과 초기철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유적이 발굴, 조사되었으나 보고서는 청동기시대주거지 4기에 대해서만 발표되어 있다.
주거지는 60∼80㎡ 규모의 장방형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로 수혈깊이는 50∼70㎝ 정도이다. 진흙으로 다진 바닥에는 기둥을 받치기 위한 주춧돌이 장축으로 2열 놓여 있고 북쪽에는 돌로 테를 돌려 만든 화덕이 있다.
제2호 주거지의 화덕에는 바닥에도 판석을 펴 강계 공귀리 주거지의 화덕과 같은 형태이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겹아가리토기·심발형토기·짧은목항아리·공귀리식토기·각형 및 장방형의 반달돌칼·돌화살촉·돌도끼·어망추·돌낫·환상석부·돌끌 등이 있다.
제2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에는 바닥 밑에 엽맥문(葉脈文)이 나타나 있는 것도 있다.
이 심귀리 유적은 공귀리·토성리·노남리 등 압록강유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와 같은 단계로 이 지역의 서기전 1000년 전반기의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