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216년(고종 3), 고려군이 거란군과 개평역에서 벌인 전투.
배경
경과 및 결과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노원순(盧元純) · 오응부(吳應富) · 김취려(金就礪)를 각각 중군 · 우군 · 후군의 병마사로 삼아 거란군을 막게 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적이 청천강 방면으로 침입하자 조양진(朝陽鎭: 현 평안남도 개천)에 주둔하고 있던 고려군은 이를 격파하고, 이어 연주(連州: 현 평안남도 개천), 창주(昌州: 현 평안북도 창성), 구주(龜州: 현 평안북도 구성) 등 각지에서 거란군을 물리쳤다. 이후 장군 이양승(李陽升)이 장흥역(長興驛)에서 적을 공격하자 적이 창주에서 연주(延州)의 개평역(開平驛: 현 평안북도 영변)과 원림역(原林驛)으로 옮겨 주둔하였는데, 종일토록 행렬이 이어졌다.
고려군은 진군하다가 연주(延州)에 머물렀는데 고려는 삼군이 도착하였음에도 감히 전진하지 못하다가, 후군의 김취려가 장군 기존정(奇存靖)과 더불어 적군의 포위를 돌파하면서 적군을 치니 거란군이 무너졌다. 뒤이어 김취려가 적을 추격하여 개평역을 지나자, 역의 북쪽에 매복해 있던 거란군들이 급히 중군을 기습하였다. 이에 고려 군사들이 거란군과 맞서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고려군과 거란군 간의 전투 중에서 최초의 대규모 전투이며, 고려군이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거란군의 기세를 크게 꺾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상기, 『고려시대사』(동국문화사, 1961)
- 한국중세사학회, 『13세기 고려와 김취려의 활약』(혜안, 2011)
논문
- 신안식, 「고려 고종 초기 거란 유종의 침입과 김취려의 활약」(『한국중세사연구』 30, 한국중세사학회, 2011)
- 이상문, 「김취려」(『군사』 11,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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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전투나 경기 따위에서 올린 성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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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거란 유민의 추장(?~?). 야율유가가 인솔하는 몽고군에게 쫓겨 고려로 쳐들어왔으나, 고려의 후군 병마사 김취려에게 대패하여 묘향산으로 달아나다 죽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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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나라의 경계 안에 있는 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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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 시대의 군 체제. 초기에는 전군(前軍), 후군(後軍), 좌군(左軍), 우군(右軍), 중군(中軍)의 오군(五軍)으로 두었다가 전군, 후군을 없앤 것이다. 나중에 다시 오군으로 환원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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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옛날 중국(中國)에서 왕이 국외(國外)로 나갔을 때 서울에 남은 태자(太子)를 일컫던 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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