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의 거문고 독주곡 형식. 1984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 강동일(姜東日)은 19세에 방금선(方錦善)의 형부인 유성옥(柳成玉)에게 1개월간 거문고 풍류를 배우고, 20세 때 방금선을 찾아가 1개월간 거문고산조 신쾌동(申快童)류와 한갑득(韓甲得)류를 학습했다.
32세 때 성금연(成錦鳶)에게 가야금산조를 익혔고, 그 뒤 조금앵 국악원에서 3년간, 임춘앵 국극단에서 10년간, 김진진(金眞眞) 일행과 3년, 박미숙 단체에서 1년 등 창극 반주를 했다.
1960년엔 김윤덕(金允德)에게 가야금을 사사했고 1963년엔 아쟁을 독학으로 연마하기도 했다. 1980년에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하여 기악부 장원을 차지했으며, 1984년에 제20회 신라문화제 전국 국악경연대회에 나가 현악부 최우수상을 획득하였다.
그의 거문고산조는 한갑득류를 주로 해서 새로 짠 것으로 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 자진모리 · 단모리(세산조시) · 엇모리로 구성된다. 그의 거문고산조는 느긋한 리듬과 촉급한 리듬을 조화시켜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출하는 기교가 능란하다는 평을 받는다.
방금선은 1927∼1930년에 경남 진주에서 김종기(金宗基)로부터 가야금 풍류를 잔영산에서 굿거리까지 그리고 가야금산조를 진양에서 자진모리까지 배웠다. 1931∼1935년엔 진주에서 김정문(金正文)에게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운 후 1935년에 서울로 올라와 정정렬(丁貞烈)에게 <춘향가>를 익혔다.
1937∼1939년엔 신쾌동에게 거문고 풍류를 잔영산에서 굿거리까지, 또한 거문고산조를 진양에서 자진모리까지 학습하였다. 그 뒤로는 국악활동을 중단하였으며 1945년에 한갑득에게 거문고산조를 진양에서 자진모리까지 배웠고, 1948년엔 정남희(丁南希)에게 가야금산조를 한바탕 배운 것을 끝으로 기악 연주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