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마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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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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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내용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지역에 있었다. ‘건마’는 익산시 금마면의 ‘금마’와 서로 통하는 음이며, 익산시 내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유물의 분포상태를 근거로 건마국의 구체적인 세력범위는 금마면·왕궁면·팔봉면·삼기면 일대를 포함하는 일정지역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건마국은 마한소국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1∼2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지는 정치집단으로서, 다른 한소국(韓小國)과 마찬가지로 중심 대읍락인 국읍(國邑)과 다수의 읍락군(邑落群)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건마국은 마한 목지국(目支國)이 백제국(伯濟國) 세력에 통합된 뒤에는 나머지 마한 소국들을 통솔하는 중심세력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출토되는 청동기유물의 수량이나 성격을 통하여 그 지역에서는 서기전 5∼4세기 이래 다수의 소규모 세력집단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소집단들은 서기전 3∼2세기경의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를 배경으로 하는 발달된 정치권력의 대두로 독립된 정치집단으로 통합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건마국은 그와 같은 정치집단이 성장발전한 나라로서 삼한소국들 중에서도 그 형성시기가 상대적으로 이른 편에 속하여서, 지배집단의 성격도 비교적 토착성이 강한 집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한

참고문헌

『삼국지(三國志)』
『삼한사회형성과정연구(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이현혜, 일주각, 1984)
「삼한문제(三韓問題)의 연구(硏究)」(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1976)
「준왕(準王) 및 진국(辰國)과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의 제문제(諸問題)」(김정배,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13, 박영사, 1976)
「익산(益山) 다송리(多松里) 청동유물(靑銅遺物) 출토묘(出土墓)」(전영래, 『전라북도유적조사보고(全羅北道遺跡調査報告)』 5, 1975)
「익산군(益山郡) 이제(梨堤) 출토(出土) 청동일괄유물(靑銅一括遺物)」(김원룡, 『사학연구(史學硏究)』 20, 1968)
「익산(益山) 오금산(五金山) 출토(出土)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과 세형동검(細形銅劍)」(김원룡, 『고고미술(考古美術)』 8-3, 1967)
집필자
이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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