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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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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한 과거.
개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던 과거 시험으로, 별시(別試), 정시(庭試), 경사가 여러 번 겹쳤을 때 시행한 증광시(增廣試) 등이 있었다.

내용

조선시대는 국왕이 즉위하거나 즉위한 지 30∼40년 또는 50년이 된 것을 큰 경사로 여겼다. 또한 원자·원손의 탄생, 왕세자의 책봉·가례·입학, 국왕이나 왕비·대비·대왕대비 등이 나이 60세 또는 70세가 되는 해, 왕비·대비·대왕대비 등이 어머니가 된 지 30년 이상 되는 해, 국왕이나 왕비·대비·대왕대비 등에 존호하는 일, 이들이 죽었을 때 종묘에 합사(合祀)하는 일 등을 경사로 여겼다.

이 밖에 국왕이나 왕세자·왕비·대비·대왕대비 등이 중환에서 쾌유했을 때, 반역의 무리를 토벌했을 때 등을 국가적인 경사로 생각해 종묘에 고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으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경축하기 위해 전국에 포고한 뒤 과거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과거에는 별시·정시·증광시 등이 있었다. 별시는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나 당하관 이하 관원들에게 10년에 한 번씩 특별 승진을 위해 중시(重試)를 치를 때 실시하였다.

정시는 원래 매년 봄과 가을에 성균관과 사학(四學) 유생들을 궁중에서 시험 보게 하여 성적 우수자에게 직부회시(直赴會試)·직부전시(直赴殿試) 또는 2푼[分]·1푼의 푼수를 주는 데 불과했다. 그러나 1583년(선조 16)부터 정식 과거로 승격되면서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개설되었다.

증광시는 경사가 겹쳤을 때 특설하며, 큰 경사가 여러 번 겹쳤을 때 대증광이라 하였다. 이런 경우 ‘증광별시’라 하기도 하고 ‘오경증광’ 또는 ‘칠경증광’으로 칭해 명칭에 겹친 경사의 수를 밝혔다. 이때는 급제자의 수도 증원하였다. 1590년(선조 23)에 실시한 증광별시의 문과급제자와 1745년(영조 21)의 『속대전(續大典)』에 규정한 급제자는 아래 [표]와 같다.

[표] 증광별시 문과급제자수 (단위 : 인)

분류 지역 식년·증광시 급제자 1592년(선조 25) 증광별시 급제자 증원수 속대전 급제자 증원수
문과초시 관시(館試) 50 80 30 80 30
한성시(漢城試) 40 58 18 64 24
경기(京畿) 20 34 14 32 12
전라(全羅) 25 41 16 40 15
충청(忠淸) 25 41 16 40 15
경상(慶尙) 30 48 18 48 18
강원(江原) 15 21 6 24 9
평안(平安) 15 21 6 24 9
황해(黃海) 10 15 5 16 6
함경(咸鏡) 10 15 5 16 6
합 계 240 374 134 384 144
문과회시문과전시 33 40 7 40 7
자료 1)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권60, 광해군 4년 윤11월 정축조.
자료 2) 『속대전(續大典)』예정 제과조.

전기에는 증광시와 별시를 실시하였고, 후기에는 증광시와 정시를 실시하였다. 특히 그 명칭에 경사의 내용 또는 겹친 경사의 수를 밝혀 토역 정시(討逆庭試)·청정 경정시(聽政慶庭試)라든가 합칠 경정시(合七慶庭試)·경과 정시(慶科庭試)로 호칭되었다. 시험 시행 날짜는 일관(日官)이 길일을 택해 정하고, 예조가 그 시행 세칙으로 규구(規矩)를 품정해 각 시험장에 하달하였다.

1401년(태종 1) 신사 증광시(辛巳增廣試)로부터 비롯되어 조선 전대에 걸쳐 실시되다가 1893년(고종 30)에 대비전(大妃殿, 明憲王后)의 책비(冊妃) 50주년과 고종의 즉위 30주년을 합경(合慶)하는 계사 경과정시(癸巳慶科庭試)를 마지막으로 이듬해 갑오경장 때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고종실록(高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국조방목(國朝榜目)』
『태학지(太學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이조사마시고(李朝司馬試攷)」 상·하(조좌호, 『성균관대학교논문집』 14·16, 1961·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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