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동고분군은 경산지역의 중심고분군인 임당(林堂)지역 고분군 가운데 동쪽 편에 위치한 고분군이다. 2011년 사적으로 지정된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에 인접해 있다. 부적동고분군 유적이 있는 구릉지대에는 부적동고분군 이외에도 서쪽으로 직선 약 300m 거리인 구릉의 제일 높은 지대에 6기의 고분이 있고, 또한 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500m 지점의 구릉 서쪽 경사면에 약 16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다.
부적동 고분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형은 낙동강의 큰 지류 중의 하나인 금호강(琴湖江) 남쪽변에 동서로 길게 뻗은 구릉지대이다. 이 지역은 남쪽을 제외한 동 · 북 · 서쪽이 금호강 연안까지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고 구릉 남쪽에는 영남대학교가 있다.
이 고분군 주변에는 복숭아나무 · 포도나무 등 과수들이 많이 심어져 있고 민가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부적동고분군에는 모두 8기의 봉토분이 남아 있었으나 3기는 택지개발로 훼손되거나 없어졌고 지금은 5기의 대형봉토분이 남아 있다. 부적리 331번지 일대의 과수원에 5기의 대형 봉분이 군집되어 있고, 남쪽 오솔길을 건너면 봉분이 깎인 1기의 고분이 있다.
이곳에서 남으로 약 100m 지점의 구릉경사면에도 고분으로 추정되는 봉분이 여러 기 있는데, 주택단지 조성 때에 많이 파괴되었다. 고분의 규모는 지름이 7∼24m, 높이가 1.5∼5m에 이르는 대형인데, 대부분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택지개발로 없어진 1기의 대형분이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나머지 2기와 그 주변 일대가 1995∼1997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에 의해 발굴 및 조사되었다. 발굴된 고분들 중에서 봉토가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었다. 내부구조는 판석으로 지상에 축조한 돌방무덤이고, 봉토 내에서 머리크기의 강돌이 대량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돌무지무덤 등의 구조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택지개발지구에서 제외되어 발굴조사되지 않은 대형봉토분 5기는 그 형태나 크기 등이 임당동고분군과 조영동고분군의 대형분들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4∼6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에서 채집된 토기뚜껑은 끝이 뾰족한 보주형(寶珠形)의 손잡이가 있고 뚜껑 아래 끝부분까지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색깔은 안팎 모두 밝은 회청색인데, 바깥 면에는 자연유의 반점이 많이 남아 있다.
경질토기로서 미세한 모래알갱이를 극소량 함유한 정선된 점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하였다. 이 뚜껑은 신라 · 가야의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물이다.
부적동고분군은 행정구역상으로 각각 압량읍 조영동고분군과 임당동고분군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일대는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 압량국(押梁國: 押督國)이라는 소국이 존재했다는 기록 등으로 미뤄볼 때 일찍부터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서 당시 이 지역 세력가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