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 조선시대, 중앙과의 연락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지방 관청의 서울 사무소.
내용
『고려사』 열전 31 조준 편을 살펴보면 “주현의 아전으로 서울에 와 있으면서 자기 지방의 일을 보는 사람을 기인(其人)이라 하는데 그들은 각처(各處)에 예속되어 노예처럼 부려져 고생을 견디지 못해 도망하는 자까지 있으며 주관 기관에서는 경주인을 독촉해 하루에 1인의 속(贖)으로 베 1필씩 징수한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경주인은 경저에서 기인을 관리하고 이들이 도망했을 경우 대신 속바치는 업무도 병행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시대에도 경저는 지방 각 고을의 연락 사무는 물론 공물, 부세(賦稅) 상납과 역(役)을 차정(差定)하는 등의 업무를 맡아 보았다. 이에 공물, 부세 상납을 위해 상경한 지방 향리들은 경저의 저사(邸舍)에서 숙박하는 것이 통례였고, 공납 물품도 경저를 통해 일차적으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각사(各司)에 상납되었다. 이에 경주인들은 상경한, 고을의 향리와 유생들에게 돈을 꾸어 주고, 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며, 중앙에 상납해야 하는 부세가 제때 올라오지 않아 정부 관서의 독촉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대동법(大同法)이 확대 시행되면서 『대동사목』 내에 경주인들이 부리는 방자(房子)의 고립가(雇立價)가 책정되어, 연락사와, 각종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경저의 방자를 고용해 쓰는 비용이 마련되었으며, 경주인들끼리 계를 조직해 왕실과 정부 관서에 진배(進排)하는 공물을 조달하는 데 참여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정약용은 “저리(邸吏)의 폐단이 향리보다 심하다.”라고 하면서, 당시 경주인의 자릿값이 8,000냥에 달한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
- 『성호사설(星湖僿說)』
- 『역주경국대전』-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조선조 향리의 일연구」(이수건, 『영남대학교문리대학보』 2·2, 1974)
- 「경재소와 유향소」(이성무, 『택와허선도선생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1992)
- 「향안에 대하여」(田川孝三, 『山本博士還曆紀念論叢』, 1979)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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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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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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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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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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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죄를 면하기 위하여 돈을 바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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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무를 맡기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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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규모가 아주 큰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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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국가나 공공 단체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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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고려ㆍ조선 시대에, 지방 호족 및 토호의 자제로서 중앙에 볼모로 와서 그 출신 지방의 행정에 고문(顧問) 구실을 하던 사람. 또는 그런 제도. 지방 세력을 견제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신라의 상수리 제도에서 유래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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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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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서울에 있던 관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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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고려ㆍ조선 시대에, 한 고을에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구실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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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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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관청과 그 부속 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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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조선 시대에, 지방의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남자 하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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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물품을 나라에 바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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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경저리와 영저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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