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후시

  • 역사
  • 지명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의주의 대안(對岸)인 중강 일대에서 중국과 사무역(私貿易)을 하던 국제 시장.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최주희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조선시대사)
  • 최종수정 2023년 12월 0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중강후시는 의주 북단 중강 일대에서 중국의 산서 상인 등과 조선의 만상, 송상, 경상 등이 비공식적으로 교역하던 사무역 시장을 일컫는 말이다. 1593년(선조 26)에 전란과 기근에 따른 식량난과 군수 물자 마련을 위해 유성룡이 명에 요청하여 중강개시가 열린 이후 양국 상인들이 관의 감독을 피해 더 큰 무역 효과를 누리고자 자발적으로 개설한 대외 무역 시장이다. 1660년(현종 1)가 봉황성의 책문에서 사행단에 합류한 사상층이 후시무역을 열자 점차 교역량이 감소하였고 1700년(숙종 26) 중강개시가 폐지되면서 교역이 중단되었다.

정의

조선시대, 의주의 대안(對岸)인 중강 일대에서 중국과 사무역(私貿易)을 하던 국제 시장.

내용

중강후시는 의주 북단 중강 일대에서 중국 상인과 조선 상인들이 사적으로 교역하던 대외 무역 시장을 일컫는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柳成龍)이 건의하여, 요동 지방으로부터 식량과 마필을 조달하기 위하여 개시 무역(開市貿易)이 시작되었으나, 밀무역 성행, 국가 기밀 누설, 후금의 성장으로 인한 군사적 위기를 이유로 1613년(광해군 5) 폐지되었다.

명청 교체 후 청의 요구로 1646년(인조 24)에 중강개시가 재개되었고, 이후 1700년(숙종 26) 폐지되기 전까지 양국 상인들의 교역의 장으로 활발히 운영되었다. 그러나 중강개시는 의주부윤의 감독 하에 교역 절차를 따라야 했으며, 암말[牡馬]/*牡馬은 '수말'을 뜻하므로 내용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슈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과 인삼의 교역은 일체 엄금하였고, 사무역도 금지했기 때문에 무역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에 중강개시가 열리던 곳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비공식적, 불법적인 형태로 열리던 사무역이 행해졌는데, 이를 '중강후시(中江後市)'라 한다.

개시 무역의 금령이 해이해지는 틈을 타 조선의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 상인들과 서울 상인 일부가 참여해 중국 산서 상인 등과 교역하였다. 또 개시 무역이 연 2회 날짜를 정해 정기적으로 열렸던 데 반해, 후시무역은 사행(使行)이 있을 때마다 이루어져 전체적인 교역량은 공무역을 능가하였다. 교역 물품 역시 개시 무역에서 거래한 물품뿐만 아니라 교역이 금지된 물품들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의주 일대 대외 무역은 '중강후시'의 이름으로 50여 년간 크게 성행하였다.

의의 및 평가

후시 무역의 성장은 17세기 후반 대외 정세가 안정되고 중국, 일본과의 무역이 재개되면서 국가 간 무역 수요가 증대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관권의 통제와 개입이 배제된 후시 무역은 국내 사상층이 외국 상인들과 직접 교역해 각국의 상품의 유행과 수출을 유도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조선 후기 만상, 송상과 같은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사상층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후시 무역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1660년(현종 1)부터 요동의 책문(柵門) 밖에서 후시 무역이 행해지자, 사행단의 마부 혹은 짐꾼을 가장해 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중강후시의 교역량은 점차 줄어들었다.

1700년(숙종 26) 중강개시에 조선 상인이 나오지 않아 교역이 이루어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청에 의해 중강후시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은 청에 자문을 보내 중강후시를 중단하기로 했다.

최근, 중강후시의 폐지 시기를 『만기요람』에 기재된 1700년이 아닌, 『동문휘고』에 의거해 1701년(숙종 27)으로 수정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조선왕조실록』

  • - 『통문관지』

  • - 『동문휘고』

  • - 『북관기사』

  • - 유승주, 「조선후기 대청무역의 전개과정」(『백산학보』 8, 백산학회, 1970)

  • - 稻葉君山, 「灣商」(『朝鮮史講座』, 조선사학회, 1923)

  • 단행본

  • - 구도영, 『16세기 한중무역연구』(태학사, 2018)

  • - 유승주·이철성, 『조선후기 중국과의 무역사』(경인문화사, 2002)

  • - 이철성, 『朝鮮後期 對淸貿易史 硏究』(국학자료원, 2000)

  • 논문

  • - 신세완, 「조선후기 中江開市의 운영 양상과 매매물화」(『역사와 세계』 61, 효원사학회, 2022)

  • - 심재권, 「자문(咨文)”을 통한 조선(朝鮮)과 명(明)의 중강개시개설(中江開市開設)과 혁파(革罷)과정 분석」(『古文書硏究』 45, 한국고문서학회, 2014)

  • - 유완상, 「朝鮮中期 中江開市에 대한 硏究- 중강개시를위요한 선 . 명 . 청 . 관계의 일척」(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67)

주석

  • 주1

    : 말 몇 마리. 우리말샘

  • 주2

    :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 우리말샘

  • 주3

    : ‘사신 행차’를 줄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4

    : 사상(私商): 개인이 하는 장사. 또는 그 장수. 우리말샘

  • 주5

    : 조선 시대에, 송도(松都)의 상인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6

    : 말뚝으로 만든 우리나 울타리의 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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