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계몽과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1918년 최남선(崔南善)·오세창(吳世昌)·박승빈(朴勝彬)·이능화(李能和)·문일평(文一平) 등 당시 지식인 33명이 발기하여 우리 문화 증진에 공헌하고 구락부원간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설치하였다.
언문(言文)·예의·의식주 등 일상 생활의 개선 등을 연구, 선전하고자 여러 가지 잡지와 기타 필요한 서적을 간행하였고, 신문·잡지 등 각종 서적을 갖추어 놓고 일반에게 열람시켰다. 그 밖에도 임시 강연회 개최와 활발한 유희의 보급 등으로 대중 계몽과 학술 연구 발표에 주력하였다.
1927년 최남선·정인보(鄭寅普)·이윤재(李允宰)·임규(林圭) 등 계명구락부 요원은 주시경(周時經)·이규영(李奎榮) 등의 <말모이> 원고를 인수하여 ≪조선어사전≫ 편찬에 착수함으로써 조선어연구회의 모체가 되었다.
기관지인 ≪계명≫은 편집 겸 발행인이 남상일(南相一)이었고, 1921년 5월 1일에 창간되어 1933년 1월 27일까지 통권 제24호를 내었다. 잡지를 통한 고전 연구는 가장 의의 있는 활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계명≫ 제18호 최남선의 <삼국유사해제>, 제19호 이능화의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융만교차기 隆滿敎箚記>, 부록에 실려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제20호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槿域書畫徵> 등의 귀중한 자료를 소개하였다.
그밖에도 ≪신민공론 新民公論≫·≪낙원≫·≪신천지≫·≪신청년≫ 등의 잡지를 발간, 민족 문화 연구와 대중의 계몽에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