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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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작품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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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내용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고구려무」는 고구려시대의 춤이 아니고, 고구려와 연관된 옛 시를 창사로 부르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춤이다. 창사는 다음과 같다.

금화 절풍모 쓰고/백마로 더디 도네/번득이는 넓은 소매/해동에 새가 온 듯하네(花折風帽 白馬少遲回 翩翩舞廣袖 似鳥海東來).

이 시는 순조 무자(戊子) 『진작의궤(進爵儀軌)』에 의하면 수나라 양제(煬帝)가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고구려 사람들의 춤을 보고 지은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와 관련된 시임에는 틀림없다. 고종 계사(癸巳)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의하면, 「고구려무」의 춤추며 상대하는 절차는 「엽무(葉舞)」와 같다고 되어 있다.

「엽무」는 「첨수무(尖袖舞)」의 속칭으로 영조 때 고쳐 부르게 한 것으로, 칼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춤이다. 「고구려무」는 6명의 춤으로 구성된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다. 순조 기축(己丑) 『진찬의궤(進饌儀軌)』에 의하면, 무동(舞童)의 복식은 금화첨립(金花添笠)을 쓰고 회색괘자(灰色掛子)와 남천익(藍天翼)에 홍광대(紅廣帶)를 띠고, 오혜(烏鞋)를 신는다.

여기(女妓)는 화관을 쓰고, 초록단의(草綠丹衣)·황초단삼(黃綃單衫)을 입고, 속에는 남색상(藍色裳), 겉에는 홍초상(紅綃裳)에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띠고, 오채한삼(五彩汗衫)을 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궁중정재무도홀기』가 있다.

참고문헌

『진작의궤(進爵儀軌)』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집필자
장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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