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출신.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동경의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재학중 일본거주 한국인고학생의 비밀결사인 형설회(螢雪會) 및 흑우회(黑友會)에 가입, 활동하였다.
그뒤 흑우회가 박열(朴烈)과 김약수(金若水)의 계열로 양분되자 박열이 주도하는 흑우회(黑牛會)에 참가하였으며, 사회과학이론의 연구를 통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러던 중 1923년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귀향한 뒤 식민통치의 부정, 새로운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1927년 조대수(趙大秀)·강기찬(康箕贊)·김형수(金炯洙)·고영희(高永禧) 등을 포섭하여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독서회의 운영을 위하여 우리계(宇利稧)라는 조합을 설립하였는데, 회원들로부터 매월 회비를 징수하여 사회과학서적 등을 구입, 윤독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경찰에 발각됨으로써, 193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공소를 제기해 1931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았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