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출신.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세우고 1920년 7월 서울에서 노형규(盧衡奎)·신덕영(申德永) 등과 연결을 맺고 주로 전라남도 지역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금활동을 폈다.
또한 동지 포섭에도 힘을 쏟아 조직을 확대하여가며 대한민국임시정부와도 연락하며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은 징역 5년형을 선고하였다. 공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 역시 징역 5년형을 선고하여 옥고를 치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