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출신. 3·1운동 때 진주에서 김재화(金在華)·강달영(姜達永) 등과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사회단체와의 교섭을 통하여 시위를 추진하는 한편, 인근지역인 사천·삼천포 등지로 만세시위를 확대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이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붙잡혀 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1919년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 6월형을 파기하고 3년형을 선고하여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뒤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고 전국 각지에 지회(支會)가 설립되자, 진주지회의 설립에 참여, 활동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80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