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원묘(高峯原妙, 1238~1295)는 중국 송(宋) 말과 원(元) 초의 임제종(臨濟宗) 선승(禪僧)이다. 소주(蘇州) 오강(吳江) 출신으로 15세에 가화(嘉禾) 밀인사(密印寺)에서 출가하여 천태(天台)를 배우다가 선(禪)으로 전향했다. 항주(杭州) 천녕사(天寧寺) 등에서 임제종 설암 조흠(雪岩祖欽)에게 수학했다. 오랜 정진 끝에 1279년부터 항주 사자암(師子岩)에 머물었고 1291년 대각선사(大覺禪寺)를 세웠다. 고봉 원묘는 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고봉원묘선사어록(高峰元妙禪師語錄)』 등을 남겼다.
1책 목판본. 조선 시대 간본은 1399년 8월 지리산 덕기사(德奇寺) 개간본, 1501년 가야산 봉서사(鳳棲寺) 개간본, 1565년 논산 쌍계사(雙溪寺)본, 1604년 하동 쌍계사본, 1608년 조계산 송광사(松廣寺)본, 1633년 안변 석왕사(釋王寺)본, 1634년 장흥 천관사(天冠寺)본, 1635년 정읍 용장사(龍藏寺)본, 1681년 울산 운흥사(雲興寺)본, 1686년 승주 징광사(澄光寺)본, 1701년 문경 봉암사(鳳巖寺)본, 1731년 묘향산 보현사(普賢寺)본 등 다수가 전해지고 있다.
고봉 원묘의 시자(侍者)인 지정(持正)이 기록한 것을 문인 홍교조(洪喬祖)가 편록(編錄)하여 1295년에 개간했으며, 현존본은 1358년 영중(永中)이 남선집운정사(南禪集雲精舍)에서 중간한 것을 저본으로 한다.
『고봉화상선요』는 간화선 수행의 요점을 간추려서 설명한 책으로 홍교조의 서문과 주영원(朱潁遠)의 발문이 붙어 있다. 「개당보설(開堂普說)」 1편, 「시중(示衆)」 14편, 「결제시중(結制示衆)」 2편, 「해제시중(解制示衆)」 3편, 「입양시중(立陽示衆)」 1편, 「제야소참(除夜少參)」 2편, 「만참(晩參)」 1편, 직옹(直翁)과 신옹(信翁)과 이통(理通)에게 내린 「법어」 3편, 「통앙산화상의사서(通仰山和尙疑嗣書)」 1편, 「실중삼관(室中三關)」 1편의 총 2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첫 법문인 「개당보설」에서는 방거사(龐居士)의 「시방동취회(十方同聚會)」 법문을 들어서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를 볼 것과 자신의 체험을 예로 들면서 의정(疑情: 의심)을 크게 일으켜 도를 깨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마음을 밝히려면 일체의 선악을 버려야 하고 대분발심(大憤發心)과 큰 의심으로 일관해서 수행해야 함을 역설했다. 「결제시중」에서는 삼현(三玄)의 요지를 밝혔고, 마지막의 「실중삼관」에서는 3대 가풍을 소개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에 선승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는데, 조선 후기 강원 이력과정의 사집과 교재로 지정되었다. 사집과는 종밀(宗密)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고려 후기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 종밀의 저술을 요약해 주석을 붙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간화선을 주창한 송의 대혜 종고(大慧宗杲)의 편지글을 수록한 『서장(書狀)』과 본서이다. 이는 선교겸수의 방향과 간화선풍의 실천을 아우르는 구성이었다. 앞서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조사(祖師)인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은 『대혜어록(大慧語錄)』을 보고 의심을 깨뜨리고 『고봉화상선요』를 통해 지해(知解)를 떨쳐 내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본서에 대한 주석서도 나왔는데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선요사기(禪要私記)』,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 선요기(禪要記)』가 대표적이다.
본서는 중국 임제종 선승 고봉 원묘의 선 사상과 수행 기풍을 담은 것으로 조선 시대 간화선풍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