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현령 윤석오(尹錫五)가 호적정리를 향리에게 일임하자, 향리들은 농간을 부려 호적이 문란해지므로 그에 대한 불만으로 민란이 일어났다.
통영에서 농간을 부린 감관과 아전을 잡아다가 조사를 하는 등으로 무마하였으나, 백성들은 통문을 돌리고 관아로 몰려가서 서리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고성은 군문(軍門)이 가까운 곳에 있어 조정에서는 먼저 난을 진압하여 주모자를 처단한 뒤 보고하도록 하였다.
정부에서는 민란의 주모자 셋을 목베고 통문을 만들어 돌린 홍섭(洪涉)은 엄중한 형을 가한 뒤 먼곳에 유배시켰고, 김장신(金章信) 등 다섯은 엄한 형을 가한 뒤 유배시켰다. 그리고 윤석오도 체포되었으며, 당시의 현령 심의직(沈宜稷)도 난의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