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준(金俊) 또는 김종(金鍾). 전라남도 담양출신.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조선의열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1925년 중국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에 입학하여 제4기생으로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조선의열단 간부학교 및 전술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어 혁명이론과 군사교육을 통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1938년 10월 조선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중국 군사위원회 정치부와 교섭하여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자 전방공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김원봉 등 조선민족혁명당 세력이 임시정부에 가담하면서 조선의용대가 1942년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자, 제1지대 제1구대장에 임명되어 후베이성 라오허거우[湖北省老河口]에 주둔하면서 초모공작·대적선전공작·적정수집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상해에서 죽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