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목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학생항일구국회 간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의성(義城)
  • 사망 연도1977년
  • 출생 연도1913년
  • 출생지평안남도 용강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현서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김덕목 사진 미디어 정보

김덕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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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학생항일구국회 간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평안남도 용강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및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그 뒤 흥사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학생항일구국회에 참가하여 항일의식 고취 및 한중우호증진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상해 프랑스조계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1개월 여에 걸쳐 갖은 악형을 당한 뒤 석방되었다.

1933년 9월 중국 중산대학교(中山大學校) 법학원 경제과에 입학하였고, 1934년 2월에는 학생항일구국회 간부로 선출되어 항일투쟁의 수단으로 대적선전 및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산대학교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 고취, 대적선전,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하여 1939년 3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40년에는 난닝회전[南寧會戰]에 참가하였고, 그해 5월에는 중국군사위원회군령부 첩보참모학교에 입학하였다.

1942년에는 한국광복군총사령부의 참모로서 활약하는 한편,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과 파괴활동, 연합군의 중국해안 상륙을 위한 특수공작을 수행하는 등, 첩보활동을 통한 일본군 격멸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1945년 12월에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항전기념장을 수여받았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에는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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