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출신. 1931년부터 3년 동안 김준연(金俊淵) 등 국내의 독립운동지사에게 자금을 지원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또한, 1942년에 함경북도 성진고주파공장(城津高周波工場)을 폭파할 것을 계획, 현지 답사하던 중 일본군경에 발각되어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체포되어 1945년 2월에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