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덕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경북의열단사건
  • 사망 연도192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7년(고종 24)
  • 출생지경상남도 밀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현서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남도 밀양 출신.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8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吉林)과 상해(上海)를 전전하면서 독립투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1919년 11월 10일 김원봉(金元鳳)·이종암(李鍾巖)·이성우(李成宇)·윤소룡(尹小龍)·배중세(裵重世)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들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황상규(黃尙奎)를 중심으로 직접 행동대가 조직되자, 1920년 3월 상해에서 구입한 폭탄을 휴대하고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서 최경학(崔敬鶴)과 접촉, 거사계획을 세웠다.

1920년 12월 27일 최경학이 밀양경찰서에 폭탄 2개를 던져 건물을 크게 파괴시켰다. 그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잡혀 3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1년 6개월 만에 가출옥, 석방되었다.

그러던 중 1925년 7월 11일 이종암이 국내에 잠입하였고, 그 해 11월 이종암·배중세·한봉인(韓鳳仁) 등 여러 동지와 거사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이종암이 잡힘에 따라 경북의열단사건(慶北義烈團事件)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시작되고, 심한 경찰의 고문에 심하자 몇 번이나 자결을 기도하였으며, 끝내는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기려수필(騎驢隨筆)』

  • - 『종사취재고(倧史取材稿)』

  • - 『독립운동비사(獨立運動秘史)』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