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복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한인애국단 비밀단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전령 장교,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장 등을 역임한 군인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고일명(高一鳴)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53년
출생지
황해도 안악
정의
일제강점기 때, 한인애국단 비밀단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전령 장교,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장 등을 역임한 군인 ·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고일명(高一鳴). 황해도 안악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쥬쿄상업학교[中京商業學校]를 마치고 1931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金九)가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여 비밀 단원으로 국내외를 연결하면서 군자금 모집, 일제밀정 총살, 기밀문서 수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중국 중양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뤄양분교(洛陽分校)와 난징[南京] 중양군관학교에서 폭넓은 군사교육과 작전술·전략술 등 다양한 군사 기술을 익힌 후, 1936년 중국군 제9사단에 편입되어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쉬저우[徐州]·난커우[南口] 등지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특파단원(軍事特派團員)으로 시안[西安] 지방에 가서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광복군 총사령부 전령 장교로 임명되어, 중국 각지를 돌며 수십 명의 청년을 모집하는 등 광복군 병사 모집에 힘을 쏟았다.

1941년 광복군 제2지대의 간부로 장자커우[張家口]일대에서 대일 전선에 참전하였고, 1943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의 제2과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부 총무 과장을 역임하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졸업, 6·25 때 참전하였으며 1953년 육군 준장으로 승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이봉창의사의 항일투쟁』(이현희, 국학자료원, 199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3·1운동사론』(이현희, 동방도서, 1979)
『한국독립운동사자료』 3(국사편찬위원회, 1975)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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