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고일명(高一鳴). 황해도 안악 출신.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쥬쿄상업학교[中京商業學校]를 마치고 1931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金九)가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여 비밀 단원으로 국내외를 연결하면서 군자금 모집, 일제밀정 총살, 기밀문서 수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중국 중양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뤄양분교(洛陽分校)와 난징[南京] 중양군관학교에서 폭넓은 군사교육과 작전술·전략술 등 다양한 군사 기술을 익힌 후, 1936년 중국군 제9사단에 편입되어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쉬저우[徐州]·난커우[南口] 등지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특파단원(軍事特派團員)으로 시안[西安] 지방에 가서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광복군 총사령부 전령 장교로 임명되어, 중국 각지를 돌며 수십 명의 청년을 모집하는 등 광복군 병사 모집에 힘을 쏟았다.
1941년 광복군 제2지대의 간부로 장자커우[張家口]일대에서 대일 전선에 참전하였고, 1943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의 제2과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부 총무 과장을 역임하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졸업, 6·25 때 참전하였으며 1953년 육군 준장으로 승진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