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오른손이 부서져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상태이다. 관련 문헌 기록과 명문이 없어 구체적인 조성 시기는 알 수 없다.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을 입은 편단우견 형식으로 법의를 입고 있으며, 마귀를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 손 자세를 취하고 있다. 8세기 경주의 항마촉지인 불상과 유사한 형식으로 조성된 지방 양식의 불상이다. 그런데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된 광배는 9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
개설
내용
불상은 낮고 편평한 육계(肉髻: 정수리 위에 솟아나온 부분), 커다란 나발(螺髮: 소라 형태의 머리카락), 큼직큼직한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양발 사이에 펼쳐진 부채꼴의 옷 주름 등을 통하여 볼 때,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수도 경주(慶州)에서 유행하던 항마촉지인 불좌상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움츠린 어깨, 짧은 목, 형식화된 법의 주름, 몸에 비해 지나치게 두꺼운 오른팔, 어색해 보이는 왼손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상의 특징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다. 즉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상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비례와 균형, 표현 면에 있어서 그것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광배는 거대한 연잎을 펼친 듯한 모습으로, 양쪽 가장자리의 꺾여 들어간 곳이 비교적 아래쪽에 치우쳐 있어서 통일신라시대 9세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거신광(擧身光: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의 표현)의 광배 속에 다시 2개의 돌기 선으로 두광(頭光: 머리 주위의 빛의 표현)과 신광(身光: 몸 주위의 빛의 표현)을 구획하였다. 두광과 신광의 중심에는 연화문(蓮華文)이 새겨져 있고, 그 바깥으로 화려한 보상화문(寶相華文)이 표현되어 있다. 두광과 신광 밖에는 화염문(火焰文)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上臺)와 중대, 하대로 이루어진 팔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이다. 앙련(仰蓮: 연꽃이 활짝 핀 모습) 형식의 상대는 중판연화문(重瓣蓮華文: 연잎 두 개가 겹쳐진 모습의 연화문)이며, 팔각으로 이루어진 중대 모서리에는 기둥 돌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는 상대의 연판보다는 큼직하게 복련(覆蓮: 연꽃을 엎어 놓은 모습) 형식의 복판연화문(複瓣蓮華文: 두개의 연잎으로 이루어진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당시 수도 경주와는 구별되는 양식을 보여주는 영주 부석사(浮石寺) 자인당(慈忍堂)에 봉안되어 있는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등과 비교된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사찰문화재: 경상북도Ⅱ』(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 2008)
-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최성은, 한길아트, 2003)
- 『국보』 4 석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5)
- 『문화재대관』보물 중(문화재관리국,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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