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의 집안은 대대로 양반 집안이다. 그의 아들은 정의 현감을 지냈는데, 현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오색 상자 속에 파랑 저고리 · 반물치마 · 다홍치마 · 갑사댕기를 담아서 가져와 외동딸에게 선물로 주었다.
딸은 예촌의 양씨(梁氏)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그 딸이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져서 부모 형제도 몰라보게 되었다. 하루는 딸이 집을 나가 찾을 수가 없었는데 딸을 찾고 보니, 약혼한 시집의 모내기하는 논에서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하녀가 그 딸을 업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점을 쳐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가져다준 선물에 한양 일월조상이 따라온 탓에 벌어진 일이므로 큰 굿을 하여 원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굿을 시작하여 시왕맞이 때가 되니, 딸이 연주(煉酒)를 바른 오물떡을 먹고 싶어해 급히 만들어 주었다. 딸은 그 떡 채롱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굿판을 벌여 나갔다. 이를 본 아버지는 “양반의 집에서 어찌 이런 굿을 할 수 있느냐.”라며 당장 굿판을 그만두게 하고 딸을 사랑방에 가두었다. 그러자 딸은 나무 동이처럼 쭈그려 앉은 채 죽고 말았다. 딸을를 찾아 집으로 업어 왔을 뿐 아니라 죽어가는 딸을 대신하여 굿판에 나선 하녀도, 굿을 해 주고 집에 돌아간 심방도 차례로 아기씨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 시신의 장사를 지냈는데, 그 뒤 이 원혼을 고씨 집안과 그 사돈이 되는 김씨 집안에서 수호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딸이 죽어갈 때 오물떡을 요구하고 나무 동이처럼 쭈그려 앉아 죽었으므로, 이에 근거하여 이 굿을 할 때는 ‘동이풀이굿’을 한다. 동이풀이굿이란 큰 동이에 쌀 · 술 · 오물떡을 가득 담아 무명으로 묶어 놓고, 심방이 그 무명을 이빨로 물고 들어 올린 채로 춤을 추며 원한을 풀어주는 굿이다.
이 본풀이는 집안의 수호신에 대한 조상 본풀이인 동시에 동이풀이굿이 발생한 유래를 설명해 준다. 일월조상이 옷에 붙어 온다는 관념은 말명 신앙과도 유사한 점이 있어, 제주도 조상 본풀이와 한반도 무속과의 관련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