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춤 이름. 송나라의 사악(詞樂)인 <석노교 惜奴嬌>를 부르며 추었는데, ≪고려사≫ 악지에는 춤의 절차에 대한 기록은 없고 <석노교 곡파>의 악사(樂詞)가 전할 뿐이다. <곡파>정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한때 단절될 뻔하다가 다시 부활되었고, 무보(舞譜)가 ≪악학궤범≫ 권4에 전한다.
≪세종실록≫ 권29에 의하면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잊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던 <곡파>가 1425년(세종 7) 9월에 재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악학궤범≫에 <곡파>의 무보가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 뒤 다시 정리하여 성종 때까지 계속 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곡파는 죽간자(竹竿子) 2인, 춤 2인으로 구성되며, 춤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음악이 <회팔선인자 會八仙引子>를 연주하면 두 사람이 나가 좌우로 갈라서고 음악이 그친 다음 죽간자의 구호가 있고 <석노교>의 반주에 의하여 춤추다가 무자(舞者) 2인이 <석노교>의 미전사(尾前詞)와 미후사(尾後詞)를 노래한다. 가사의 내용은 원소(元宵)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원소란 중국 명절의 하나로 본래는 음력 정월 14일∼16일을 ‘원소삼야(元宵三夜)’라 하였던 것인데, 송나라 때는 17일과 18일을 추가하여 ‘원소오야’라고 하였으며, 이 5일 동안은 밤에 등촉을 밝히고 연악을 계속하였다.
이어 전편(攧遍)·입파(入破)·허최(虛催)·최곤(催袞)·최박(催拍)·중곤(中袞)·헐박(歇拍)·쇄곤(煞袞)의 주악 순서에 의하여 춤추고, 죽간자의 후구호(後口號)가 있은 다음 <회팔선인자>의 주악으로 춤이 끝난다.
차주환(車柱環)의 ≪당악연구≫에 따르면, ≪악학궤범≫ 곡파의 구성은 명칭에서 약간의 출입은 있으나, 동영(蕫穎)의 도궁박미(道宮薄媚)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악학궤범≫에 실려 있는 <석노교>의 미전사·미후사는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석노교곡파> 가사 첫머리[歌頭]의 전단·후단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