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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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귀
공덕귀
정치
인물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97년
출생지
경상남도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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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내용

경상남도 통영 출생. 아버지는 도빈(道彬)이고, 어머니는 방말선(方末善)이다. 1936년동래 일신고등여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 1940년 일본 요코하마 공립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황금동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1943년 일본 동경여자신학전문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으나 마치지 못하고 1944년 황금동교회로 복귀하였다.

그 뒤 1946년 조선신학교(한신대의 전신) 여자신학부의 전임강사가 되고, 1949년 1월 당시 서울시장이었단 해위(海葦) 윤보선(尹潽善, 1897~1990)과 결혼하였다.

1960∼1962년까지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을 아내로서 보필하였고, 1969년 안동교회 여전도회장을 역임한 이래 주로 기독도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해왔으며, 1972년에는 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서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4년 2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여성평화회의에 참석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문제에 대해 토론하였고, 5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초대 인권위원장이 되어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투신하였다.

1974년 윤보선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자 구속자가족협의회의 회장이 되었고, 이어 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부회장(1974∼1978)과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1977∼1980)을 역임하였다.

1977년부터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 이 해에 남영나일론과 방림방적 여성근로자들의 임금투쟁을 지원하였으며, 각계 지도자 100여 명으로 구성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어 1978년 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 위원이 되고, 이듬해 YH대책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 위원장(1983∼1986)과 교회일치여성협의회 초대 회장(1986∼1991)을 역임하였다. 1997년 서울 안국동에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가 있다.

참고문헌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공덕귀, 여성신문사, 1994)
『기생관광실태 조사보고서』(공덕귀, 아시아 교회여성연합회, 1983)
『구국의 가시밭길』-나의 회고록-(윤보선, 한국정경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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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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