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번절제사, 중군총제, 전라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404년(태종 4) 호군(護軍)으로 승진해 무신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부친상을 당하고도 자세가 오만하다는 이유로 대간(臺諫)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1408년 상호군(上護軍)으로서 풍해도조전첨절제사(豊海道助戰僉節制使)가 되었으며, 1410년 경원부병마절도사(慶源府兵馬節度使)가 되었다.
이때 우디거[尤狄哈] · 오도리[吾都里]의 야인들이 침입해오자 이들을 막아 싸웠으나 패했다. 죽은 자가 73인, 부상자가 52인이며, 전마(戰馬) 120필과 병갑(兵甲) 24부(部)를 모두 적에게 빼앗겼다. 이리하여 두 능을 함주(咸州)로 옮기고, 민가를 옮겨 경성군에 합병하고, 그 땅을 비우게 되었다. 이러한 패전의 책임을 물어 대간에서 논란이 많았으나, 호분시위사총제(虎賁侍衛司摠制)로 전직되었다가, 1411년 동지총제(同知摠制)가 되었다.
얼마 없어 탄핵을 받아 경상도 영해(寧海)에 귀양갔다. 1412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내금위절제사(內禁衛節制使)와 중군총제(中軍摠制)를 지냈다. 1413년 동지총제와 내금위중군절제사(內禁衛中軍節制使)를 지낸 뒤, 1418년 이번절제사(二番節制使)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 중군총제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처치사(全羅道處置使)로 활약하던 중 죽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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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태종실록5권, 1403년(태종 3) 4월 1일. "도총제 곽충보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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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영해부에 유배 : 태종실록22권, 1411년(태종 11) 11월 26일. "사간원에서 다시 곽승우의 죄를 청하니 고신을 거두고 원방에 부처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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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내금위 절제사 임명 : 태종실록23권, 1412년(태종 12) 2월 21일. "곽승우에게 고신과 과전을 주고 내금위 절제사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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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전라도처치사 재임중 사망 : 세종실록53권, 1431년(세종 13) 8월 11일. "곽승우가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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