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년(충선왕 4)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33.3㎝, 가로 51.4㎝. ≪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이 설(說)하여진 동기를 적은 서분(序分 : 전체를 3분한 경우 앞에 해당하는 부분)의 내용을 도상화한 그림이다.
≪관경 觀經≫의 서론을 세 장면으로 압축한 이 관경서분변상도는 화면을 상·중·하의 삼단으로 나누어, 아래에서 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도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단부에는 아사세태자(阿闍世太子)가 굶어 죽어 가는 빈비사라대왕(頻毘沙羅大王)에게 음식을 가져가는 위데희왕후(韋提希王后)를 칼을 빼어 죽이려 하자 월광(月光)과 기파(耆婆) 등 두 대신이 이를 극구 말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중단부에는 구름 속에 싸여 있는 건물 안에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가 유폐된 빈비사라대왕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법을 설하고 있다. 이 건물 밖에는 영축산의 석가불이 보낸 목건련존자(目健連尊者) 역시 대왕에게 설법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상단부는 왕비가 영축산의 석가불을 향하여 울면서 미움과 고통이 없는 진정한 행복만이 가득한 서방 극락세계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자 성중(聖衆 : 극락세계에 있는 모든 보살)을 거느린 석가불이 구름을 타고 와, 빈비사라왕궁의 왕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서방극락에 갈 수 있는지 가르쳤다. 특히 극락에 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하여 설교했다.
이와 같은 빈비사라왕궁의 슬픈 이야기는 석가불이 관경을 설법하게 된 동기로서, 관경의 처음 부분인 서분에 나타난다. 폭이 매우 좁은 화면에 그려진 궁전은 현실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구름을 탄 부처님 일행과는 구획되어 있다.
관경을 설하는 석가불과 관경서분의 주인공들인 아사세태자·빈비사라왕·위데희왕비는 강조했지만, 이외의 인물은 조그맣게 묘사하고 있다. 뒤로 물러날수록 작게 그리는 건물의 원근법은 중요한 내용이 아래에서 위로 전개되는 구성과도 일치한다.
왕사성(王舍城)의 궁전은 용마루의 화려한 무늬, 치밀한 기왓골, 현란한 포작(包作), 열주(列柱) 모양의 기둥과 벽면의 웅장함, 기단부의 찬란한 치레 등에서 당시 고려 궁전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 같다. 갈색의 바탕색 위로, 간간이 사용된 붉은색과 두꺼운 금니(金泥)는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기(畫記)에 의하면, 정광다원(淨光茶院)의 비구 각선(覺先)이 성상(聖上)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1312년(皇慶 元年) 2월에 그렸다고 되어 있다.
1312년인 충선왕 복위 4년에 그려졌다는 사실은 충렬왕과 충선왕 사이의 왕권 쟁탈전의 비극을 겪은 후 이를 방지하려는 간절한 소망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하고 있어 더욱 뜻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