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좌는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광배는 유실되었다. 불상은 통견의 착의법을 보이고 있으며, 양손은 안쪽으로 모으고 있어 언뜻 선정인을 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하고 있어서 아마도 항마촉지인의 변형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촉지인 불좌상의 기본적인 틀을 따르고 있으나, 표현 양식에서 고려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머리에는 나발이 표현되었고, 육계는 높다. 전반적으로 위아래로 긴 이등변 삼각형의 구도 안에 인체를 재구성한 느낌인데, 높은 육계도 그러한 비례에 맞춘 듯하다.
상호는 눈썰미와 입술의 선이 강한 곡선을 그리며 강조되어 있다. 목은 짧아서 다소 움츠러든 느낌이 드는데, 이는 제작상의 편의와 구조적 안정성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며, 대신 목에 표현된 삼도를 가슴 위쪽까지 내려오게 표현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통견의 대의에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내의가 보이며, 그 사이로 가사 자락이 흘러나와 있다. 옷주름은 규칙성을 띠면서도 유려하게 깊은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의 무릎은 매우 높으면서 앞으로 짧게 돌출되어 있어서 다소 불안정한 느낌이 들지만, 불상 전체에 미묘한 운동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특히 다리 위에 올려놓은 손의 손가락들이 가지런하지 않고 무엇을 매만지고 있는 듯 보이거나 편안하게 힘을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과 어우러져 생동감이 느껴진다.
3단 팔각연화대좌(八角蓮花臺座)의 상대석인 앙련은 원형 평면에 3단의 연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불상의 무릎 폭에 맞춰져 비좁은 대신, 마치 결가부좌한 하체와 대칭을 이루듯 반구형으로 둥글게 만들어졌다. 안상이 새겨진 8각의 중대석은 비례적으로 매우 길게 조성되었다. 팔각의 복련 하대석은 양감이 깊지 않은 복판 연판문으로 처리되었으며, 그 아래로 방형의 지대석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 좌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표정은 절제되고 대신 곡선미를 살린 눈과 입술을 강조한 점, 깊은 선각으로 묘사된 옷자락, 상대석의 앙련이 반구형에 가까운 3단 연판문으로 조성된 것, 상대석과 하대석이 대칭적이 아니고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 결가부좌한 다리의 무릎이 높은 대신 몸 쪽으로 응축되어 있는 점 등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전형양식이 해체되고 대신 새로운 표현이 시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상의 구도와 비례를 통해 불안정성을 느끼게 하지만, 이러한 불안정성을 미묘한 운동감으로 승화시키고, 이를 통해 사실적이 아니면서도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점이 고려시대 불상조각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전형적인 틀이 해체되면서 지방별, 장인별 개성이 넘치는 불상이 만들어지던 시기임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