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허집(括虛集)』의 저자는 괄허 취여(括虛取如, 1720~1789)이다. 취여는 1720년(경종 1)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유교 경전을 배웠다. 13세에 문경시 사불산 대승사에서 출가하였으며, 환암(幻庵) 장로에게서 인가(認可)를 받았다. 이후 환응(喚應) 선사의 의발(衣鉢)을 받음으로써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10세 법손이 되었다. 문경시 사불산 운봉사(雲峰寺)에서 수행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괄허집』은 1888년(고종 25) 취여의 5세 법손인 청해 혜운(淸海惠雲)과 치민(致敏) 등이 취여가 남긴 유고(遺稿)를 수집하여 문경 김룡사(金龍寺) 양진암(養眞庵)에서 간행하였다.
『괄허집』은 2권 1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은 20.6×15.6cm이고, 10행 20자로 이루어져 있다. 2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를 사용했다.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불교전서』 제10책에도 수록되어 있다.
책 머리에는 1888년(고종 25)에 김성근(金聲根)이 쓴 서문과 1887년(고종 24)에 허훈(許薰)이 쓴 서문, 1878년(고종 15)에 치능(致能)이 쓴 서문이 있으며, 책의 마지막에는 1887년(고종 24)에 명원(明遠)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권1에는 「유거사(幽居辭)」, 「청야사(淸夜辭)」, 「운산가(雲山歌)」, 「몽수음(夢愁吟)」, 「종풍곡(宗風曲)」, 「시채정선자(示采定禪子)」를 비롯하여 절구와 율시 등 12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종풍곡」은 저자가 체득한 선지(禪旨)와 가풍을 5언시 108구로 엮은 장편시인데, 스스로 체험한 마음의 세계인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시가로 풀어 엮은 것이다. 이 시는 영가대사의 「증도가(證道歌)」나 도오화상의 「낙도가(樂道歌)」 등과 함께 깨달음의 세계를 음미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5언 56구로 된 「시채정선자」는 채정에게 가르침을 주며 심법(心法)을 찬송한 내용을 담은 시이다.
권2에는 「표충사도총섭안록중수서(表忠祠都摠攝案錄重修序)」를 비롯하여 서문 · 사찰중수기 · 신창기(新創記) · 제문 · 상량문 · 권선문 등 잡문 23편과 「괄허설(括虛說)」, 「족부족설(足不足說)」 등 7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표충사도총섭안록중수서」는 임진왜란 때 의승장이었던 청허 휴정, 사명 유정(四溟惟政), 기허 영규(騎虛靈圭) 세 대사가 나라를 지킨 공을 표창하여 세운 밀양 표충사에 대한 명함록(名啣錄)이다. 「괄허설」은 자신의 당호(幢號)를 괄허라고 한 까닭을 밝히는 글이고, 「족부족설」에서는 "사람은 만족을 아는 자도 있고 알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만족을 아는 이는 나물밥과 넝마옷으로도 만족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자는 고대광실(高臺廣室)에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만종록(萬鍾祿)을 먹어도 오히려 불만을 느낀다"라고 하며 끝없는 욕심의 허물을 경계한 글이다. 「치쟁승설(治爭僧說)」은 승려가 서로 이해를 다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았으며, 「계악자설(誡惡者說)」은 형상 있는 악과 형상 없는 악이 있음을 설명한 글이다. 「권선설(勸善說)」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선악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 말하며 선악과 인과를 밝힌 글이다.
『괄허집』 권1에 수록된 124편의 시는 18세기 불교 수행자의 운수행각(雲水行脚)과 지적 활동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권2에 수록된 23편의 잡문에서는 문경과 상주 일대 사찰들의 불사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마지막 7편의 글에서는 취여의 인생관과 수행자로서 고뇌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