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는 기·승·전·결의 4수로 이루어진 한시체이다. 절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율시가 생긴 절구가 나타난 것을, 율시의 축약형이라는 설이다. 또 하나는 절구가 한나라 때부터 있었는데, 평측을 보지 않았다는 설이다. 두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절구의 종류는 대략 율절(律絶), 악부절(樂府絶), 고절(古絶), 요절(拗絶)이 있다. 절구의 작법은 기승전결의 방법이 절대적이다. 시의 경구(警句)는 3·4구에 있으며, 정경이 어우러져야 절구라고 할 수 있다.
오언 · 칠언 다같이 기(起) · 승(承) · 전(轉) · 결(結) 4수로 이루어진다. 산행(散行)으로 지은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대장(對仗)을 이룬 것도 있다. 절구는 율시(律詩)와 같이 근체시(近體詩)에 속한다. 이는 고체시(古體詩)와의 대칭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체시는 격률이 아주 엄격하여 평측(平仄)과 압운(押韻)에 있어서 고체시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절구는 시체가 무한한 함축력을 요구한다. 글자수가 적어서 오언절구가 20자, 칠언절구가 28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시인의 정감을 드러냄은 물론이요, 정운(情韻) · 시취(詩趣) · 화경(化境)까지 자아내어 언외지미(言外之味)와 상외지상(象外之象)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근체시가 한시 시단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묘미를 지닌 예술의 결정체라고 이른다.
절구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절구의 발생이 율시가 생긴 이후인 것을 근거로 하여 율시의 전반부를, 혹은 율시의 후반부를, 혹은 율시의 수미양연(首尾兩聯)을 따서 이루게 되었다는 설(文體明辯)이다. 또 하나는 절구가 당나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찍이 한나라로부터 있었다. 다만 평측만을 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때에 성률설(成律說)이 형성되면서 절구에 평측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齊) · 양(梁)때에는 이미 절구의 정체가 성립되었다는 설이다. 이 두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후자가 유력하다.
절구의 종류는 대략 네 가지로 구분된다. ① 율절(律絶)은 음률이 평기식(平起式)이나 측기식(仄起式)의 정식(定式)에 맞아 격식이 율시와 대체로 같은 것이다. 즉, 단용(單用)하면 율절이고 쌍용(雙用)하면 율시가 되는 것이다. ② 악부절(樂府絶)은 가행체(歌行體)에 속하는 절구로 당인(唐人)의 악부 가운데 율시의 영향을 받은 절구이다. 평측도 대체로 맞는다. ③ 고절(古絶)은 평측이 고르지 않는 4구 시로 고시와 같은 절구이다. ④ 요절(拗絶)은 율절과 고절을 섞어 지은 것으로, 점(黏)과 대(對)를 따지지 않는 절구이다.
절구에서 점은 매구 2자와 4자의 평측이 상구의 2자 · 4자와 같은 것이며, 대란 매구 2자와 4자 평측이 상구의 2 · 4와 상반되는 것을 이른다. 그러나 근대에는 절구에 율절만을 사용하고 여타는 쓰지 않아서 평측이 모두 율에 맞으므로 금절(今絶)이라고 부른다. 절구는 통상 평성운이 많고 측성운은 적다. 그리고 율시와 같이 한 운 안에서만 운을 달 수 있다.
오언절구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① 측기식 평성운 정식(仄起式平聲韻定式)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韻)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叶) ② 평기식 평성운 정식(平起式平聲韻定式)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叶)
칠언절구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① 측기식 평성운 정식(仄起式平聲韻定式) (仄)仄平平 (仄)仄平(韻) (平)平 (仄)仄仄平平(叶)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叶) ② 평기식 평성운 정식(平起式平聲韻定式) (平)平(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 (仄)仄平(叶)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叶) 괄호 안에 있는 평측은 통용을 의미한다.
절구의 작법은 기승전결의 방법이 절대적이다. 절구 4구 중에 첫구가 기이다. 비흥(比興), 또는 서사(敍事) · 사경(寫景)으로 서두를 낸다. 중요한 것은 시제에 맞아야 한다. 둘째 구가 승이다. 처음 구를 이어받아야 한다. 셋째 구가 전이다. 영활(靈活)과 운치가 있어야 한다. 넷째구가 결이다. 전구를 수습하여 끝내야 한다. 그러나 시의 경구(警句)는 어디까지나 3 · 4구에 있으므로 의상과 형상을 결합하여 정경(情景)이 어우러져야만 절구라고 이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절구는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나라 우중문(于仲文)에게 준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이 시는 고시(古詩)이지 절구가 아니다. 5절은 최치원(崔致遠)의 「추야우중(秋夜雨中)」, 7절은 최치원의 「도중작(途中作)」이 절구의 효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