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한시. 오언절구이다. 비가 오는 가을밤에 자신을 알아 줄 지기(知己)가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추야우중」은 「제가야산(題伽倻山)」 ·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와 더불어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최치원의 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라 하였고, 허균(許筠) 역시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가장 빼어난 시라고 하였다.
한편 최치원의 문은 대개 변려체(騈儷體)이고 시도 육조풍(六朝風)이 농후하여 격이 높지 않다는 평도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그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최치원의 시가 격이 높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성현(成俔)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우리나라의 문장이 최치원에서 시발하였지만, 그의 시는 의(意)가 정치(精緻)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추야우중」의 원시는 다음과 같다.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등불 앞에 초조한 심사는 만리를 달리네[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추야우중」은 지금까지 결구의 의미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최치원의 귀국 이전의 작품이라고도 하고, 또는 귀국 후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계원필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그의 시 경향과 내용으로 보면 귀국 후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최치원의 시의 경향을 보면 그가 고변(高騈)의 종사관이 되기 이전의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회의와 자조가 흔하게 발견된다. 그러나 귀국의 길에 올랐을 때에 읊은 몇 편의 시작에서는 그의 고고한 세계관이 나타난다.
「추야우중」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결구의 ‘萬里心(만리심)’은 언표(言表)에 나타난 그대로 만 리 타국에 있는 작자의 심경이기보다는, 마음과 일이 서로 어그러져 세상과는 이미 천 리 만 리 떠나고 있는 작자의 방황하는 심회를 호소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귀국하여 벼슬이 아찬(阿飡)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진성여왕의 난정으로 나라의 운세가 기울고 있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을 얻지 못하여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리고 스스로 가야산으로 숨어 들었다. 이러한 만년의 행적은 ‘만리심’의 실천 현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