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4월 24일 칙령 제14호 「병원관제」에 의하여 설립된 내부병원이 1900년 6월 30일 칙령 제24호 「병원관제 중 개정건」에 따라 보시원(普施院)으로 발족되었다가 며칠 뒤 광제원으로 개칭되었다.
주요업무는 내부병원의 업무를 계승하여 일반 환자를 구료하는 이 외에 전염병을 취급하는 피병원(避病院)의 별도시설 및 진료와 5일 간격으로 감옥의 죄수들의 진료를 맡았고, 1906년 4월부터 창녀들의 검진도 실시하였다.
내부병원에는 종두업무를 취급하기 위하여 15명의 의사 중 10명의 종두의를 두었으나 광제원으로 개칭되면서 한성종두사(漢城種痘司)가 독립되어 종두업무는 분리되었다.
직제는 원장 1명, 기사 1명 등 2명의 주임관(奏任官)과 의사 7명, 제약사 1명, 서기 1명 등 9명의 판임관을 두었는데, 의사는 대방의(大方醫) 3명, 외과의 2명, 소아의 1명, 침의(針醫) 1명으로 구성되었다.
기사는 의사와 제약사의 업무 및 매약을 관리하는 직책이었고, 제약사는 각종 약료의 검사 뿐만 아니라 학생 수명을 두어 제약법과 화약법(化藥法)을 학습시키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의료비는 국고보조를 받았으나 약값은 무의탁자와 죄수를 제외하고는 시중 약값을 고려하여 싼값으로 환자가 부담하였다. 또,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는 외래환자의 진료,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환자의 집에 왕진하는 시간으로 정하여 일과를 운영하였다.
1907년 3월 10일 칙령 제9호로 의정부 직할의 대한병원으로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