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가산(佳山)에 있는 청동기시대 갈돌·민무늬토기조각·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내용
제2호집터의 경우 파괴가 매우 심하여 일부만 확인할 수 있었으나, 1호집터는 벽선과 기둥구멍이 뚜렷이 있고 중앙의 기둥구멍 사이에서 갈돌[碾石]이 출토되었으며, 집터 바닥 전면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석재를 비롯하여 민무늬토기조각들이 수습되었다.
또한 이 집터에는 북벽 가까이에 감실(龕室)이 있으며, 가운데 기둥구멍 두 개를 중심으로 북쪽에 두 개, 남쪽에 두개의 보조기둥구멍이 거의 대칭이 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남쪽에 최대너비 80㎝, 최소너비 33㎝ 정도의 사다리꼴을 한 입구가 달려 있었다.
유물은 바닥 전면에 분포되어 있으나, 가운데 중심이 되는 기둥구멍을 기점으로 하여 북서쪽에 화덕자리와 돌부스러기 등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의 위치에 해당하는 것 같으며, 반면 동남쪽은 숫돌을 포함하여 점판암제의 미완성 석기재료가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석기를 제작하였던 곳으로 생각된다.
토기는 전형적인 민무늬토기인데 말기적인 형태의 것은 전혀 없다. 송암동 1호집터와 유사한 집터로는 부여 송국리유적을 들 수 있다. 그 연대는 서기 전 6∼4세기 초로 보고 있는데, 송암동집터도 서기 전 5∼4세기 경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광주송암동발굴조사보고서』(최몽룡, 전남대학교박물관, 1977)
- 「광주송암동의 석기문화」(최몽룡, 『역사학연구』 6,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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