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에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 중의 하나. 이는 춤이라기보다 임금의 대가(大駕)의 행로(行路)에서 가요(歌謠)를 적은 축(軸)을 올릴 때 <학무 鶴舞>와 <연화대 蓮花臺> 등을 연출하여 임금을 즐겁게 하는 행사이다.
연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길 가운데 침향산(沈香山)과 지당구(池塘具)를 설치하고, 화전벽(花甎碧)을 침향산 앞에 편 뒤, 기녀 1백 명이 침향산 좌우에 갈라선다.
다음에는 가요축(歌謠軸)의 함과 탁자를 길 왼쪽에 설치하고, 기녀 두 사람이 탁자 좌우에 선다(이 때 나이어린 기녀를 택한다). 대가가 이르면 전부고취(前部鼓吹) 악공 50명이 기녀들의 뒤에 나누어 서고, 이어 <여민락령 與民樂令>을 연주하면 여러 기녀들이 노래를 부른다.
박(拍)을 치면, 도기(都妓)가 손을 여미고 족도하며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는다. 이어 기녀 두 사람이 손을 여미며 꿇어앉아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함을 받들고 나아가 도기의 오른쪽에 꿇어앉는다.
도기가 첨수(尖袖)로써 두 기녀가 건네주는 가요축을 받들고 일어서서 나아가 꿇어앉으면 여러 기녀들도 동시에 꿇어앉는다. 다음에는 승지가 도기로부터 가요축을 전해 받들어 나아가 꿇어앉으면 내시가 성함(盛函)을 전해 받으러 나아간다.
그러면 도기는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 때 <학무>와 <연화대> 정재가 연출된다. 춤이 모두 끝나고 전부고취와 후부고취가 환궁악(還宮樂)을 연주하면 침향산을 화전벽 뒤에 끌어 물리고, 기녀들은 뒤로 물러 나누어 섰다가 대가가 앞으로 나아가 머물면 또 춤춘다.
이상과 같이 대궐문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절차로 되풀이하고, 대가를 시위하여 대궐 안으로 들어가면 음악이 그치고, 모든 행사가 끝난다. 조선시대 말기에서는 시행된 예가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