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군복에는 융복(戎服) 외에 구군복이 있었는데, 이 것은 개주(介胄)의 속옷으로 무관의 대례복이었다.
그 구성은 전립(戰笠, 氈笠)·이엄(耳掩)·협수(狹袖, 동다리)·전복(戰服)·전대(戰帶, 纏帶)·목화(木靴)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병부를 차고 동개·환도·등채를 갖추었다.
협수, 즉 동다리는 철릭을 간소화하여 소매를 좁혀 까치동으로 하고 허리의 주름을 없애고 솔기의 아래를 터서 동작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답호(褡護)에 착수의 소매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전복은 답호·쾌자와 같은 반비의(半臂衣)로서 군인이나 관례(官隷) 등의 소속을 표시하는 호의(號衣, 더그레)로 입었다.
품등(品等)이 높은 무관이 쓰는 전립은 안올림벙거지라 하며 품질이 좋은 모제품으로 공작미·삭모(槊毛)와 옥로(玉鷺)·밀화영(密花纓)을 달았고, 하배들이 쓰는 전립은 벙거지 또는 벙테기라 하며 돈모(豚毛)를 사용하여 만들고 장식도 없었다.
이 구군복은 무관 최고의 복식차림이었으며, 왕의 행차 때에는 대신 이하 시위(侍衛)하던 모든 신하들이 갖추어 입었다. 그러나 갑오경장 다음 해인 1895년에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서구식 신식군복에 의한 <육군복장규칙>이 반포됨으로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