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장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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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하부군졸인 나장의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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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하부군졸인 나장의 복식.
내용

≪경국대전≫에 나장은 검은 두건인 조건(皁巾) 쓰고 청색의 소매없이 만든 쾌자와 같은 옷인 청반비의(靑半臂衣)를 입으며, 납작하게 만든 끈으로 된 띠인 조아(條兒)를 맨다고 하였다.

그리고 형조·사헌부·전옥서의 나장은 검고 둥근 깃의 옷인 조단령(皁團領)을 입고, 사간원의 나장은 누른 빛의 토황단령(土黃領)을 입으며, 왕자를 수행하는 나장은 자색 난삼인 자란(紫襴)에 놋쇠로 만든 패인 두석패(豆錫牌)를 차고, 의정부·승정원·경연의 나장은 납패(鑞牌 : 납과 주석의 합금으로 만든 패)를 찬다고 하였다.

그 뒤 정조 때에는 공작우(孔雀羽)가 두개 꽂힌 전립을 쓰고 상의하상식(上衣下裳式)인 첩리(帖裏)를 입었으며, 그 위에 더그레라고 하는 호의(號衣)를 입고 전대(纏帶, 戰帶)를 띠었고, 흰 행전을 둘렀으며 미투리를 신었다.

이 호의는 ≪경국대전≫에서의 반비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쾌자와 같이 양옆솔기와 뒷솔기가 터져 아랫부분이 네 자락인 것도 있고 양옆솔기만 터져 세 자락인 것도 있으며, 호의의 빛깔은 이들의 소속에 따라 각각 달랐다고 한다.

이 호의는 ‘까치등거리’라고도 한다. 전립에 다는 공작우는 공작의 꽁지깃무늬를 맞추고 길이 46㎝, 너비 15㎝ 정도 되게 엮어서 만드는데, 공작 꽁지깃과 남빛의 새털을 한데 어울려서 펼쳐 손바닥같이 둥글넓적하고 아주 두툼하게 만들어 전립의 양쪽에 꽂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죄인을 문초하거나 매를 때리거나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을 맡았으므로 주장(朱杖 : 붉은 칠을 한 몽둥이)을 손에 들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
『한국복식사연구』(김동욱, 아세아문화사, 1979)
「평안감사환영도의 복식사적 고찰」(이주원, 『복식』 4, 한국복식학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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