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참의,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1년 수찬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어 박지계(朴知誡)가 주장한 인조의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하다 체직되었다. 얼마 뒤 사가독서하고 응교(應敎) · 승지를 거쳐 병조참의가 되었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서천군수 · 나주목사를 거쳐 1638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경상도관찰사를 재임하고 호조참의가 되어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를 겸하였다. 이 때, 이계(李烓)가 조선과 명나라가 밀통한 사실을 청나라에 고변하여 사세가 급박해지자 사태를 잘 마무리하고, 아울러 이계를 붙잡아 급히 참수하여 후환을 없앴다.
또 청나라에 붙어 권력을 휘두른 정명수(鄭命壽)를 믿고 횡포를 부리던 종제를 목베어 기개를 세상에 떨쳤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중 임지에서 죽었다. 사람됨이 강직하였으며, 재치가 있었고, 권력에는 추호도 아부하려 함이 없었다. 그 재치가 청나라와의 외교에서 마찰을 줄여 인조로부터 한때 제일의 신하로 신임을 얻었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백헌집(白軒集)』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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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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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 급제 : 『만력46년무오식년사마방목(萬曆四十六年戊午式年司馬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K 2291.7 174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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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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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이계 참수 : 인조실록43권, 1642년(인조 20) 11월 22일. "금부 도사 정석문 등이 이계를 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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