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6월 22일부터 9월 28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1912년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상편과 하편으로 나뉘어 있다. 총 82회가 연재된 장편으로, 상투적인 구소설로의 퇴행의 면모와 함께 친일적 성격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작가적 이력에 전환을 가져온 대표적인 공안류(公案類) 소설로 꼽히는 작품이다.
서울 박동에 사는 서 판서는 첫 부인과 사별한 뒤 재취를 얻지만, 역시 아들 오복을 낳고 죽어 과부 이동집을 삼취로 맞아들인다. 이동집은 전실 자식인 오복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들 또복을 낳은 뒤에도 오복을 더욱 아낀다.
서 판서는 친구 김 판서의 딸 애중이와 오복을 결혼시키는데, 혼례를 치른 이튿날 아침 신랑이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된다. 신랑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신부는 남장을 하고 서 판서 집 근처에 머물면서 염탐하던 중 칠성 어미에게서 실마리를 얻어, 이동집의 모계(謀計)에 의한 하인 칠성의 소행임을 밝혀낸다.
서 판서는 범행을 자백한 이동집을 법소(法所)로 보낸 뒤 염증나는 세상을 버리고 팔영산으로 들어가 숨는다. 김씨 부인은 첫날밤 얻은 태기로 아들 효손을 낳는다. 효손은 13세가 되어 복수를 하고자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도중에 서 판서를 만나 함께 칠성이를 붙잡자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연이 새롭게 밝혀진다. 하수인으로 알았던 칠성이는 앞서 이동집의 명령으로 범행하러 가던 도중에 어떤 불의한 남녀를 죽이고 그 남자의 시체를 신방에 대신 넣고, 오복을 업고 일본 구주(九州)까지 달아나서 15년간이나 상전의 아들을 보호하면서 공부를 시켰던 것이다.
공범으로 체포되었던 사람 또한 또복임이 밝혀지고 범인은 법소에서 판결을 받는다.
신혼 첫날 계략에 의해 신랑이 죽고, 그 누명을 쓴 신부가 진범을 찾는 ‘첫날밤 신랑 모해(謨害)’ 모티프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조생원전」, 「김씨열행록」, 「사명당전」 등의 고소설과 개작 등의 영향 관계 아래 있는 작품이다.
애국 계몽기의 작품군에서 식민지 시대의 작품군으로 이행한 이래, 이해조의 작품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일본인 구원자의 등장이나 엽기성의 강화, 신파조의 복수담 등은 이인직(李人稙)이 처음 신소설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하여 볼 때, 엽기성이나 복수담이 전대(前代)인 고전소설의 시대에 이미 존재하던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탐정소설의 효시로 간주되는 ‘정탐소설’이라는 명칭이 붙은 동일 작가의 「쌍옥적(雙玉笛)」(1911.12.)에 앞서는 추리소설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교문학 분야에서 만청 시대(晩淸時代)의 소설인 「구명기원(九命奇寃)」과 연관시켜 연구되기도 하였다.
권선징악의 장치를 볼 때, 초월적 존재가 재판에 의한 징계로 변모하고, 범인이 구출자로 전환되는 역전 등의 근대적 면모를 보이는 서술 수법을 구사한 공안류 소설이다. 그리고 신소설의 고전소설과의 접맥을 재고시킬 여지를 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